"집필자 : 남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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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는 각 목장에서 우마(牛馬) 사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제주도의 목장 경영을 위해 몽골이 목마 사육 전문가인 목호를 파견했는데 1367년부터 목자라고 하였다. 원칙적으로 목자는 16세에서부터 60세까지 국가의 말을 사육하는 국역에 종사하며 그 신분이 세습되었다. 숙종 때 『목장도』에 의하면 경기도 874인, 전라도 1,006인 등 전국의 목자 수가 모두 5,178인이었다. 목자는 관리 소홀로 말이 손실되거나 죽을 경우, 오승포로 그 값을 대납해야 했다. 한편 부정 도축·도살, 매각 등 사익을 채우는 일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목자 (牧子)
목자는 각 목장에서 우마(牛馬) 사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제주도의 목장 경영을 위해 몽골이 목마 사육 전문가인 목호를 파견했는데 1367년부터 목자라고 하였다. 원칙적으로 목자는 16세에서부터 60세까지 국가의 말을 사육하는 국역에 종사하며 그 신분이 세습되었다. 숙종 때 『목장도』에 의하면 경기도 874인, 전라도 1,006인 등 전국의 목자 수가 모두 5,178인이었다. 목자는 관리 소홀로 말이 손실되거나 죽을 경우, 오승포로 그 값을 대납해야 했다. 한편 부정 도축·도살, 매각 등 사익을 채우는 일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조선시대 한강변에 설치한 한성과 지방을 연결하는 진(津)·도(渡)의 관리책임자.
도승 (渡丞)
조선시대 한강변에 설치한 한성과 지방을 연결하는 진(津)·도(渡)의 관리책임자.
조선시대 급한 공문이나 왕의 명령 등을 각력(脚力 : 말이나 사람의 다리를 이용하여 달리는 힘)으로 전달하던 교통수단.
보발 (步撥)
조선시대 급한 공문이나 왕의 명령 등을 각력(脚力 : 말이나 사람의 다리를 이용하여 달리는 힘)으로 전달하던 교통수단.
역리는 조선시대, 역(驛)에 소속되어 신역(身役)의 하나인 역(驛)의 제반 업무를 담당하던 아전이다. 역에서 종사하는 아전은 넓게는 관군(館軍)·일수(日守)·서원(書員)·조역백성(助役百姓) 등을 포함하였다. 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에 지방 호족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는데 지역에 따라 관군, 참리(站吏)라고도 불렀다. 사무 및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이속(吏屬)과 입마역을 담당하는 마호(馬戶)로 세분되었다. 16세기 이후 국가 기강의 해이와 신분 변동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역로의 회복책을 전개해 점차 복구되었다.
역리 (驛吏)
역리는 조선시대, 역(驛)에 소속되어 신역(身役)의 하나인 역(驛)의 제반 업무를 담당하던 아전이다. 역에서 종사하는 아전은 넓게는 관군(館軍)·일수(日守)·서원(書員)·조역백성(助役百姓) 등을 포함하였다. 신라말기에서 고려초기에 지방 호족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는데 지역에 따라 관군, 참리(站吏)라고도 불렀다. 사무 및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이속(吏屬)과 입마역을 담당하는 마호(馬戶)로 세분되었다. 16세기 이후 국가 기강의 해이와 신분 변동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역로의 회복책을 전개해 점차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의 여마(輿馬)·구목(廐牧) 및 목장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사복시 (司僕寺)
조선시대의 여마(輿馬)·구목(廐牧) 및 목장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1911년 일제가 한국불교를 억압하고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제정·공포한 법령.
사찰령 (寺刹令)
1911년 일제가 한국불교를 억압하고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제정·공포한 법령.
사축서는 조선시대 잡축(雜畜)을 기르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이다. 고려시대 전구서를 계승한 것으로 조선 건국 후에도 유지되었다. 이후 예빈시에 합쳐져 분예빈시라고 하다가 1466년 사축서라 개칭하였고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처음 숭례문 밖에 있었으나 뒤에 미동으로 옮겼다. 돼지·양·염소·거위·오리 등의 잡축을 사육해 궁중의 가례·진연 등 궁중 조달을 맡았다. 축료는 경기도의 여러 읍에서 곡초·생초 등을 공물로 받아 충당하도록 하였다. 궁중 조달기능을 하였으나 민간 축정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사축서 (司畜署)
사축서는 조선시대 잡축(雜畜)을 기르는 일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이다. 고려시대 전구서를 계승한 것으로 조선 건국 후에도 유지되었다. 이후 예빈시에 합쳐져 분예빈시라고 하다가 1466년 사축서라 개칭하였고 1894년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처음 숭례문 밖에 있었으나 뒤에 미동으로 옮겼다. 돼지·양·염소·거위·오리 등의 잡축을 사육해 궁중의 가례·진연 등 궁중 조달을 맡았다. 축료는 경기도의 여러 읍에서 곡초·생초 등을 공물로 받아 충당하도록 하였다. 궁중 조달기능을 하였으나 민간 축정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조선시대,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여관.
원 (院)
조선시대,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공무 여행자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여관.
전목사는 고려시대 목장을 관장하고 전마(戰馬)·역마(驛馬)·역우(役牛) 등을 조달하던 관청이다. 성종 때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1308년 사복시에 병합되었다. 전국에 목장을 설치하였는데 목감과 간수군, 노자를 배치하여 운영하였다. 『고려사』에 어마목장(御馬牧場) 등 10개 목장이 기록되어 있다. 충렬왕 이후에 탐라목장이 세워져 중국에까지 알려진 명마를 산출하였다. 「축우마료식(畜牛馬料式)」을 제정하여 소와 말을 길러 군사·교통·외교 및 농경용으로 공급하였다. 이밖에 관마보(官馬寶)·수의박사 등을 두어 우마종 개량에 힘썼다.
전목사 (典牧司)
전목사는 고려시대 목장을 관장하고 전마(戰馬)·역마(驛馬)·역우(役牛) 등을 조달하던 관청이다. 성종 때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며, 1308년 사복시에 병합되었다. 전국에 목장을 설치하였는데 목감과 간수군, 노자를 배치하여 운영하였다. 『고려사』에 어마목장(御馬牧場) 등 10개 목장이 기록되어 있다. 충렬왕 이후에 탐라목장이 세워져 중국에까지 알려진 명마를 산출하였다. 「축우마료식(畜牛馬料式)」을 제정하여 소와 말을 길러 군사·교통·외교 및 농경용으로 공급하였다. 이밖에 관마보(官馬寶)·수의박사 등을 두어 우마종 개량에 힘썼다.
조선시대 궁중의 제향(祭享)·빈례(賓禮)·사여(賜與)에 쓸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았던 관서.
전생서 (典牲署)
조선시대 궁중의 제향(祭享)·빈례(賓禮)·사여(賜與)에 쓸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았던 관서.
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驛站)을 관리하던 종6품의 외관직.
찰방 (察訪)
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驛站)을 관리하던 종6품의 외관직.
고려·조선 시대 역로(驛路)에 마련되어 공문(公文)을 중계하고 공용 여행자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던 시설.
참 (站)
고려·조선 시대 역로(驛路)에 마련되어 공문(公文)을 중계하고 공용 여행자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던 시설.
조선시대 변서(邊書 : 변방으로 가는 공문서)를 신속히 전달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통신 수단.
파발 (擺撥)
조선시대 변서(邊書 : 변방으로 가는 공문서)를 신속히 전달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통신 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