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배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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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 (高靈 場基里 巖刻畵)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내동지석묘(內洞支石墓)는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마지막 시기 혹은 초기 철기시대의 고인돌이다. 덮개돌 · 받침돌 · 돌무더기 · 무덤방으로 이루어진 구조로서 창원 덕천리 지석묘군을 비롯하여 서부 경남 지역 고인돌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무덤방의 벽면은 마치 가야 고분처럼 매우 정연하게 축조된 모습이어서 당시 발달된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출토된 돋을띠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 마지막 시기 혹은 초기 철기시대 한일 간의 교류를 시사하기도 한다.
내동 지석묘 (內洞 支石墓)
내동지석묘(內洞支石墓)는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마지막 시기 혹은 초기 철기시대의 고인돌이다. 덮개돌 · 받침돌 · 돌무더기 · 무덤방으로 이루어진 구조로서 창원 덕천리 지석묘군을 비롯하여 서부 경남 지역 고인돌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무덤방의 벽면은 마치 가야 고분처럼 매우 정연하게 축조된 모습이어서 당시 발달된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출토된 돋을띠무늬토기는 청동기시대 마지막 시기 혹은 초기 철기시대 한일 간의 교류를 시사하기도 한다.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토기편과 인골편 등이 확인된 점에서 무덤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김해 예안리 유적,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유적 등이 있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돌무지무덤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토기편과 인골편 등이 확인된 점에서 무덤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김해 예안리 유적,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유적 등이 있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미송리형토기 (美松里型土器)
미송리형토기는 중국 동북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지방에 걸쳐 사용한 토기로, 표면에 가로줄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가 붙은 항아리 모양 토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로줄 무늬의 수가 적어지고 손잡이의 모양도 간략한 것으로 변화하였다. 이것의 상한과 하한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중심 시기는 대체로 서기전 8∼7세기에 해당한다.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서북지역이라는 한정된 범위에서 출토되며, 비파형동검과 더불어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붉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 성분의 붉은색 안료를 바르고 마연한 토기이다. 청동기시대의 거의 전 시기에 걸쳐 확인되는 붉은간토기는 생활 유적에서도 출토되지만 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서 장송의례와 관련이 깊다. 남한 전역에 분포하지만 서부 경남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 청동기시대 늦은 시기에는 플라스크모양붉은간토기를 비롯하여 지역적 특색을 보이는 것이 다수 등장하며, 일본 열도의 야요이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붉은 간토기 (붉은 간土器)
붉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 성분의 붉은색 안료를 바르고 마연한 토기이다. 청동기시대의 거의 전 시기에 걸쳐 확인되는 붉은간토기는 생활 유적에서도 출토되지만 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서 장송의례와 관련이 깊다. 남한 전역에 분포하지만 서부 경남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 청동기시대 늦은 시기에는 플라스크모양붉은간토기를 비롯하여 지역적 특색을 보이는 것이 다수 등장하며, 일본 열도의 야요이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삼천포 늑도 패총은 경상남도 사천시 늑도동에 있는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 후반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국가 사적 제450호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의 중심 연대는 서기전 2세기∼서기전 1세기대이다. 삼각형 덧띠토기 · 낙랑(계) 토기 · 야요이(계) 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이 조개더미와 집터 및 무덤 등에서 확인되었으며,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장거리 대외 교역의 중계지로서 국제 무역항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삼천포 늑도 패총 (三千浦 勒島 貝塚)
삼천포 늑도 패총은 경상남도 사천시 늑도동에 있는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 후반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국가 사적 제450호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의 중심 연대는 서기전 2세기∼서기전 1세기대이다. 삼각형 덧띠토기 · 낙랑(계) 토기 · 야요이(계) 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이 조개더미와 집터 및 무덤 등에서 확인되었으며,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장거리 대외 교역의 중계지로서 국제 무역항의 성격을 띠고 있다.
송림석탄리유적은 황해북도 송림시에 있는 팽이토기 등이 출토된 대동강 유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이다. 송림석탄리유적의 주거지에서는 팽이토기와 턱자귀를 비롯한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다. 주거지는 내부 구조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지며, 이 중 기둥구멍이 전혀 없거나 벽체에만 있는 형태는 대동강 유역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대표한다. 송림석탄리유적은 주거지와 출토 유물로 볼 때 팽이토기 문화의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계속된 유적으로 추정된다.
송림 석탄리 유적 (松林 石灘里 遺蹟)
송림석탄리유적은 황해북도 송림시에 있는 팽이토기 등이 출토된 대동강 유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이다. 송림석탄리유적의 주거지에서는 팽이토기와 턱자귀를 비롯한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다. 주거지는 내부 구조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지며, 이 중 기둥구멍이 전혀 없거나 벽체에만 있는 형태는 대동강 유역 청동기시대 주거지를 대표한다. 송림석탄리유적은 주거지와 출토 유물로 볼 때 팽이토기 문화의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계속된 유적으로 추정된다.
창원 진동리 유적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묘역식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시대 남해안 일대의 대표적 무덤유적이다. 다양한 모양의 묘역식 고인돌과 무리를 이룬 돌널무덤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은 A~K군으로 개별적인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그중 가장 규모가 큰 A군의 1호에서는 가장자리에 구획돌을 돌리고 그 안쪽으로 흙과 돌을 쌓은 후 중앙에 지상식의 무덤방이 있으며, 구획돌 바깥으로는 도랑을 돌린 구조가 확인되었다.
창원 진동리 유적 (昌原 鎭東里 遺蹟)
창원 진동리 유적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묘역식 고인돌을 비롯한 청동기시대 남해안 일대의 대표적 무덤유적이다. 다양한 모양의 묘역식 고인돌과 무리를 이룬 돌널무덤 등이 발굴 조사되었다. 묘역식 고인돌은 A~K군으로 개별적인 무리를 이루고 있으며, 그중 가장 규모가 큰 A군의 1호에서는 가장자리에 구획돌을 돌리고 그 안쪽으로 흙과 돌을 쌓은 후 중앙에 지상식의 무덤방이 있으며, 구획돌 바깥으로는 도랑을 돌린 구조가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