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서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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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高敞邑城)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에 있는 조선시대 석축 읍성이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인 다른 읍성들이 해당 고을의 읍내 한가운데 자리한 데 비해 고창읍성은 고창의 진산인 반등산(半登山)을 에워싸며 축조되었다. 고창읍성은 단종 1년(1453)에 축조되었다는 설도 있고 숙종 때 축조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읍성의 성돌에 계유년(癸酉年)에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단종 1년 혹은 그 이전인 태조 2년(1393)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창읍성 (高敞邑城)
고창읍성(高敞邑城)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에 있는 조선시대 석축 읍성이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인 다른 읍성들이 해당 고을의 읍내 한가운데 자리한 데 비해 고창읍성은 고창의 진산인 반등산(半登山)을 에워싸며 축조되었다. 고창읍성은 단종 1년(1453)에 축조되었다는 설도 있고 숙종 때 축조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읍성의 성돌에 계유년(癸酉年)에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단종 1년 혹은 그 이전인 태조 2년(1393)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구성리 산성(九城里 山城)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성동 성두산 정상부에 위치한 토성이다. 다른 일반적인 산성과 달리 성두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한 북성(北城)과 그 남쪽의 산 능선을 따라 길쭉하게 이어진 남성(南城)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은 삭토 혹은 판축에 의해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의 안쪽에는 넓은 평탄면이 조성되어 있다.
구성리 산성 (九城里 山城)
구성리 산성(九城里 山城)은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성동 성두산 정상부에 위치한 토성이다. 다른 일반적인 산성과 달리 성두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한 북성(北城)과 그 남쪽의 산 능선을 따라 길쭉하게 이어진 남성(南城)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은 삭토 혹은 판축에 의해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성의 안쪽에는 넓은 평탄면이 조성되어 있다.
금마저토성(金馬猪土城)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위치한 백제의 토성이다. 토성은 금마면에서 서쪽으로 약 800m 정도 떨어진 저성산(猪城山)에 위치해 있으며, 저성산의 정상부에서 중복에 걸쳐 삼태기형으로 지어졌다. 성벽의 둘레는 396m, 성의 높이는 4~5m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내측과 외측에 기단이 되는 돌을 놓은 다음 그 내부에 흙을 쌓는 형태의 판축 토성이지만, 지형에 따라 돌로 쌓은 구간도 있다. 백제 토성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나, 최근에는 9세기 경에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금마저토성 (金馬猪土城)
금마저토성(金馬猪土城)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위치한 백제의 토성이다. 토성은 금마면에서 서쪽으로 약 800m 정도 떨어진 저성산(猪城山)에 위치해 있으며, 저성산의 정상부에서 중복에 걸쳐 삼태기형으로 지어졌다. 성벽의 둘레는 396m, 성의 높이는 4~5m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내측과 외측에 기단이 되는 돌을 놓은 다음 그 내부에 흙을 쌓는 형태의 판축 토성이지만, 지형에 따라 돌로 쌓은 구간도 있다. 백제 토성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나, 최근에는 9세기 경에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금구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와 선암리의 경계를 이루는 봉두산(鳳頭山)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석성이다. 금구면에서 동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곳에 해발 250m 정도 되는 봉두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옛 금구현(金溝縣)의 진산이 되는 산이다. 산성은 이 봉두산의 정상부를 테뫼식으로 에워싼 석성이다.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전체 성벽의 둘레가 약 900m에 이르는 것과 약 3m 정도 높이의 성벽이 100m 정도 남아 있는 것, 동쪽의 완만한 평탄 대지에 우물이 1개소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금구산성 (金溝山城)
금구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월전리와 선암리의 경계를 이루는 봉두산(鳳頭山)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는 석성이다. 금구면에서 동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곳에 해발 250m 정도 되는 봉두산이 자리하고 있는데, 옛 금구현(金溝縣)의 진산이 되는 산이다. 산성은 이 봉두산의 정상부를 테뫼식으로 에워싼 석성이다.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전체 성벽의 둘레가 약 900m에 이르는 것과 약 3m 정도 높이의 성벽이 100m 정도 남아 있는 것, 동쪽의 완만한 평탄 대지에 우물이 1개소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전주 남고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의 고덕산 정상부에서 중복에 걸쳐 삼태기식으로 축조된 석성이다. 산성의 축성 연대는 기록에 없다. 발굴 조사도 극히 일부만 이루어져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기 어렵다. 다만 『세종실록지리지』에 고덕산 석성이라 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폐성된 것으로 나온다. 『국조보감』에는 순조 13년(1813)에 전주부에 남고산성을 쌓고 진(鎭)을 설치하였다고 되어 있다. 전주의 요해처에 해당되어 관찰사 이상황이 순조 11년(1811)에 증축하기 시작해 이듬해 관찰사 박윤수(朴崙壽)가 완공하였다.
전주 남고산성 (全州 南固山城)
전주 남고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의 고덕산 정상부에서 중복에 걸쳐 삼태기식으로 축조된 석성이다. 산성의 축성 연대는 기록에 없다. 발굴 조사도 극히 일부만 이루어져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기 어렵다. 다만 『세종실록지리지』에 고덕산 석성이라 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폐성된 것으로 나온다. 『국조보감』에는 순조 13년(1813)에 전주부에 남고산성을 쌓고 진(鎭)을 설치하였다고 되어 있다. 전주의 요해처에 해당되어 관찰사 이상황이 순조 11년(1811)에 증축하기 시작해 이듬해 관찰사 박윤수(朴崙壽)가 완공하였다.
교룡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곡동 교룡산에 위치하고 있는 통일신라 시기의 석성이다. 산성은 해발 518m의 밀덕봉과 해발 484m의 복덕봉을 에워싸면서 포곡식(包谷式)으로 축조되었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3,289m에 이른다. 성벽은 가늘고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를 한 구간도 있고, 자연 할석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를 한 구간도 있다. 성문이 4개소 있고, 성내에는 우물, 사찰, 건물지, 장대지, 군기고터, 별장청터, 소금창고터 등이 있다.
남원 교룡산성 (南原 蛟龍山城)
교룡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곡동 교룡산에 위치하고 있는 통일신라 시기의 석성이다. 산성은 해발 518m의 밀덕봉과 해발 484m의 복덕봉을 에워싸면서 포곡식(包谷式)으로 축조되었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3,289m에 이른다. 성벽은 가늘고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를 한 구간도 있고, 자연 할석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를 한 구간도 있다. 성문이 4개소 있고, 성내에는 우물, 사찰, 건물지, 장대지, 군기고터, 별장청터, 소금창고터 등이 있다.
남포읍성(藍浦邑城)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이 읍성은 고려 말 · 조선 초에 지어진 다른 읍성과 마찬가지로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발굴 조사를 한 결과. 이 성에는 동문, 남문, 서문 3개의 성문이 있고, 성문 바깥쪽으로는 옹성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남포읍성 (藍浦邑城)
남포읍성(藍浦邑城)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이 읍성은 고려 말 · 조선 초에 지어진 다른 읍성과 마찬가지로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발굴 조사를 한 결과. 이 성에는 동문, 남문, 서문 3개의 성문이 있고, 성문 바깥쪽으로는 옹성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논산 노성산성(論山 魯城山城)은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 사이에 있는 백제 산성이다. 산성이 있는 노성산은 해발 348m의 비교적 높은 산이다. 산성의 북벽이 노성산의 정상부를 지나는 데 비해 남벽은 산의 중복까지 내려와 있어 북고남저, 삼태기식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894m이고, 장방형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로 성을 쌓았다. 산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문 3개소와 건물지, 우물지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사용된 봉수대도 있다. 이 산성을 백제 열야산현(熱也山縣)의 치소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논산 노성산성 (論山 魯城山城)
논산 노성산성(論山 魯城山城)은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 사이에 있는 백제 산성이다. 산성이 있는 노성산은 해발 348m의 비교적 높은 산이다. 산성의 북벽이 노성산의 정상부를 지나는 데 비해 남벽은 산의 중복까지 내려와 있어 북고남저, 삼태기식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의 둘레는 894m이고, 장방형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로 성을 쌓았다. 산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문 3개소와 건물지, 우물지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사용된 봉수대도 있다. 이 산성을 백제 열야산현(熱也山縣)의 치소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당진 면천읍성(唐津 沔川邑城)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조선시대 석축 읍성이다. 읍성이 축조된 것은 1439년(세종 21)으로 그해 2월 축성이 결정되어 11월에 완공하였다. 당시 면천읍성에 대한 기록이 『문종실록』에 자세히 나온다. 면천읍성은 둘레 3,225척, 높이 11척, 여장 높이 3척의 크기로 지어졌으며, 적대 7개소, 성문 3개소, 옹성 1개소, 여장 56첩, 우물 3개소가 있었고, 해자는 부분적으로 굴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읍성의 성벽, 성문, 옹성 그리고 성내의 객사 등이 복원되었다.
당진 면천읍성 (唐津 沔川邑城)
당진 면천읍성(唐津 沔川邑城)은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는 조선시대 석축 읍성이다. 읍성이 축조된 것은 1439년(세종 21)으로 그해 2월 축성이 결정되어 11월에 완공하였다. 당시 면천읍성에 대한 기록이 『문종실록』에 자세히 나온다. 면천읍성은 둘레 3,225척, 높이 11척, 여장 높이 3척의 크기로 지어졌으며, 적대 7개소, 성문 3개소, 옹성 1개소, 여장 56첩, 우물 3개소가 있었고, 해자는 부분적으로 굴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근에는 읍성의 성벽, 성문, 옹성 그리고 성내의 객사 등이 복원되었다.
예산 임존성(禮山 任存城)은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백제 석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484m 봉수산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축조한 삼태기식 산성으로, 봉수산성이라고도 한다. 이 산성은 둘레가 2,462m에 이르는 삼국시대 최대급 산성으로 북벽과 서벽에 초축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다. 예산 임존성은 백제 부흥군이 나당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곳으로 이후 백제 고지(故地) 전역에서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예산 임존성 (禮山 任存城)
예산 임존성(禮山 任存城)은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백제 석성이다. 이 산성은 해발 484m 봉수산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축조한 삼태기식 산성으로, 봉수산성이라고도 한다. 이 산성은 둘레가 2,462m에 이르는 삼국시대 최대급 산성으로 북벽과 서벽에 초축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다. 예산 임존성은 백제 부흥군이 나당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곳으로 이후 백제 고지(故地) 전역에서 백제부흥운동이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이다.
백화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에 위치한 삼국시대 석성이다. 이 산성은 660년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였을 때 신라 태종무열왕이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때 몽고의 5차 침입 시 이곳에서 적극적으로 항전하여 몽고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포성봉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과 그 사이의 계곡부를 에워싸면서 산성을 쌓았다. 성벽은 일반적인 삼국시대 산성과 달리 내성와 외성으로 이루어진 이중 성벽으로 되어 있으며, 둘레는 6,183m에 이른다. 성문과 건물지, 암문지, 망루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백화산성 (白華山城)
백화산성은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에 위치한 삼국시대 석성이다. 이 산성은 660년 당나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하였을 때 신라 태종무열왕이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때 몽고의 5차 침입 시 이곳에서 적극적으로 항전하여 몽고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포성봉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과 그 사이의 계곡부를 에워싸면서 산성을 쌓았다. 성벽은 일반적인 삼국시대 산성과 달리 내성와 외성으로 이루어진 이중 성벽으로 되어 있으며, 둘레는 6,183m에 이른다. 성문과 건물지, 암문지, 망루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보령읍성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보령 지역은 서해안에 면해 있어 고려 말 이래로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다. 그래서 1400년(조선 정종 2)에 보령시 주포면에 봉당산성(鳳堂山城)을 축조하여 왜구 방비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런데 이 봉당산성은 성내의 면적이 너무 좁고 잡석과 흙을 섞어 쌓아 견고하지 않은 데다가 성내에 우물과 샘이 없어 장기적인 농성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1430년(세종 12)에 봉당산성의 동쪽 1리 지점에 새로 읍성을 축조한 것이 현재의 보령읍성이다.
보령읍성 (保寧邑城)
보령읍성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보령 지역은 서해안에 면해 있어 고려 말 이래로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다. 그래서 1400년(조선 정종 2)에 보령시 주포면에 봉당산성(鳳堂山城)을 축조하여 왜구 방비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런데 이 봉당산성은 성내의 면적이 너무 좁고 잡석과 흙을 섞어 쌓아 견고하지 않은 데다가 성내에 우물과 샘이 없어 장기적인 농성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1430년(세종 12)에 봉당산성의 동쪽 1리 지점에 새로 읍성을 축조한 것이 현재의 보령읍성이다.
사정성(沙井城)은 대전광역시 중구 사정동에 있는 석성이다. 사정성은 백제 동성왕 20년(498)에 축조하였다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아울러 백제 성왕 4년(526)에는 사정책(沙井柵)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동성왕 때 축성했다는 사정성이 현재 대전에 있는 사정성인지, 동성왕 때 축조한 사정성과 성왕 때의 사정책이 동일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백제 부흥운동기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흥군과 대전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사정책을 함락시킨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사정성과 사정책은 다른 유적이라 볼 수 있다.
사정성 (沙井城)
사정성(沙井城)은 대전광역시 중구 사정동에 있는 석성이다. 사정성은 백제 동성왕 20년(498)에 축조하였다고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아울러 백제 성왕 4년(526)에는 사정책(沙井柵)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동성왕 때 축성했다는 사정성이 현재 대전에 있는 사정성인지, 동성왕 때 축조한 사정성과 성왕 때의 사정책이 동일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백제 부흥운동기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 부흥군과 대전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사정책을 함락시킨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사정성과 사정책은 다른 유적이라 볼 수 있다.
삼정동 산성(三丁洞 山城)은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 성재산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산성이 세워진 성재산은 해발 240m에 불과한 나지막한 산봉이지만 주변 지역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또한 대전~옥천 사이 마달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산성을 만든 것으로 보아 감시를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 할석으로 성을 쌓았으나 성벽 대부분이 붕괴되어 축성법을 살펴볼 수 있는 구간은 거의 없다. 산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내에 건물지가 있을 뿐이며, 남은 성벽에 비해 성내에 평탄면은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삼정동 산성 (三丁洞 山城)
삼정동 산성(三丁洞 山城)은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 성재산 정상부에 축조된 산성이다. 산성이 세워진 성재산은 해발 240m에 불과한 나지막한 산봉이지만 주변 지역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또한 대전~옥천 사이 마달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산성을 만든 것으로 보아 감시를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 할석으로 성을 쌓았으나 성벽 대부분이 붕괴되어 축성법을 살펴볼 수 있는 구간은 거의 없다. 산성과 관련된 부대시설로는 성내에 건물지가 있을 뿐이며, 남은 성벽에 비해 성내에 평탄면은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아막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 석성이다. 산성은 성재산 정상부에서 산 중턱에 걸쳐 축조된 삼태기식 산성이다. 남벽이 산봉(山峰)의 정상부를 지나는데 비해 북벽은 산 중턱을 지나기 때문에 남고북저의 지형을 하고 있다. 산성은 성벽 전체를 가늘고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동문지, 서문지, 북문지가 확인되었고, 남벽에는 치성 3개소가 남아 있다. 성내에는 집수 시설과 건물지가 있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싸웠던 아막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아막성 (阿莫城)
아막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 석성이다. 산성은 성재산 정상부에서 산 중턱에 걸쳐 축조된 삼태기식 산성이다. 남벽이 산봉(山峰)의 정상부를 지나는데 비해 북벽은 산 중턱을 지나기 때문에 남고북저의 지형을 하고 있다. 산성은 성벽 전체를 가늘고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공한 성돌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동문지, 서문지, 북문지가 확인되었고, 남벽에는 치성 3개소가 남아 있다. 성내에는 집수 시설과 건물지가 있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싸웠던 아막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태안 안흥진성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진성(鎭城)이다. 바다와 강도(江都)를 함께 방어하고, 조운선을 호송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1,714m이며, 성벽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남문지 주변에는 여장까지 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성곽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동지지』에는 안흥진성이 1655년에 축조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성내에서 발견된 각자성석(刻字城石)에 의해 1583년에 초축된 것을 확인하였다. 1655년은 수축(修築)한 해로 보여진다.
태안 안흥진성 (泰安 安興鎭城)
태안 안흥진성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 진성(鎭城)이다. 바다와 강도(江都)를 함께 방어하고, 조운선을 호송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전체 성벽의 둘레는 1,714m이며, 성벽의 잔존 상태가 양호하다. 특히 남문지 주변에는 여장까지 잘 남아 있어 조선 후기 성곽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대동지지』에는 안흥진성이 1655년에 축조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성내에서 발견된 각자성석(刻字城石)에 의해 1583년에 초축된 것을 확인하였다. 1655년은 수축(修築)한 해로 보여진다.
익산 낭산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의 낭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 석성이다. 낭산은 해발 162m의 나지막한 구릉으로, 산성은 낭산의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삼태기형으로 축조되었다. 이 산성은 일찍부터 마한성(馬韓城)으로 불려왔고, 지표 조사에서 백제 토기편 등이 수습되어 백제의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동문지, 남문지, 북문지 등이 있고, 우물지와 건물지도 남아 있다. 성벽 바깥쪽으로 외황(外隍)도 확인된다.
익산 낭산산성 (益山 郎山山城)
익산 낭산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의 낭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 석성이다. 낭산은 해발 162m의 나지막한 구릉으로, 산성은 낭산의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삼태기형으로 축조되었다. 이 산성은 일찍부터 마한성(馬韓城)으로 불려왔고, 지표 조사에서 백제 토기편 등이 수습되어 백제의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동문지, 남문지, 북문지 등이 있고, 우물지와 건물지도 남아 있다. 성벽 바깥쪽으로 외황(外隍)도 확인된다.
익산 미륵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의 미륵산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석성이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箕準)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기준성(箕準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과 고지도에도 기준성, 혹은 기준고성이라 표기되어 있다. 백제 무강왕(武康王)이 쌓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축성법과 출토된 유물로 볼 때 통일신라 때 축조된 산성이다.
익산 미륵산성 (益山 彌勒山城)
익산 미륵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의 미륵산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자리하고 있는 석성이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 기준(箕準)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기준성(箕準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과 고지도에도 기준성, 혹은 기준고성이라 표기되어 있다. 백제 무강왕(武康王)이 쌓았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축성법과 출토된 유물로 볼 때 통일신라 때 축조된 산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