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신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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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파는 고대 한중 무역의 주요 거점으로 중국 절강성 동북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1367년 명나라 주원장이 해상 연안을 봉쇄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대외적으로 개방하고, “바다를 사로잡으면 파도가 잔잔하다.”라는 뜻을 따서 영파로 이름을 고쳤다. 중국 상인을 대표하는 ‘닝보방[寧波幇]’의 원류로 고대 한중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당나라로 향했던 구법승(求法僧)들이 거쳐 가는 주요 거점으로 ‘신라초’, ‘신라방’ 등 신라의 유적이 있다. 고려와 국교를 맺고 문물을 교류한 송나라 때에는 ‘고려사(高麗司)’와 ‘고려사관(高麗使館)’이 설치되었다.
영파 (寧波)
영파는 고대 한중 무역의 주요 거점으로 중국 절강성 동북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다. 1367년 명나라 주원장이 해상 연안을 봉쇄하는 과정에서 유일하게 대외적으로 개방하고, “바다를 사로잡으면 파도가 잔잔하다.”라는 뜻을 따서 영파로 이름을 고쳤다. 중국 상인을 대표하는 ‘닝보방[寧波幇]’의 원류로 고대 한중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당나라로 향했던 구법승(求法僧)들이 거쳐 가는 주요 거점으로 ‘신라초’, ‘신라방’ 등 신라의 유적이 있다. 고려와 국교를 맺고 문물을 교류한 송나라 때에는 ‘고려사(高麗司)’와 ‘고려사관(高麗使館)’이 설치되었다.
도문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중동부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두만강을 토문강이라고 부르는 만주족의 발음에서 유래하였다. 청나라 때에 봉금지대로 설정되어 있어서 1913년에서야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두만강 유역의 교통과 경제활동의 요지로 대표적인 조선족 집거지역으로 북한과 중국의 교류를 상징하는 도문대교와 도문철교 등이 있다. 인근의 백두산과 용정, 연길, 훈춘 등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와 조선족 문화가 남아 있다. 매년 7월과 8월 사이에 두만강과 조선족의 특색이 드러나는 두만강문화축제가 열린다.
도문 (圖們)
도문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중동부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두만강을 토문강이라고 부르는 만주족의 발음에서 유래하였다. 청나라 때에 봉금지대로 설정되어 있어서 1913년에서야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두만강 유역의 교통과 경제활동의 요지로 대표적인 조선족 집거지역으로 북한과 중국의 교류를 상징하는 도문대교와 도문철교 등이 있다. 인근의 백두산과 용정, 연길, 훈춘 등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와 조선족 문화가 남아 있다. 매년 7월과 8월 사이에 두만강과 조선족의 특색이 드러나는 두만강문화축제가 열린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시 동북쪽에 위치한 항일투쟁지.
왕청 (汪淸)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시 동북쪽에 위치한 항일투쟁지.
한중 외교 사행의 주요 거점으로 중국 요령성 동남부 압록강변에 위치한 국경도시.
단동 (丹東)
한중 외교 사행의 주요 거점으로 중국 요령성 동남부 압록강변에 위치한 국경도시.
중국 흑룡강성 동남부에 위치한 항일투쟁지.
목단강 (牡丹江)
중국 흑룡강성 동남부에 위치한 항일투쟁지.
산해관은 전통시대 한중 외교 사행로에 위치한 중국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만리장성의 동쪽 관문이자 기점으로 유관(?關, ?關)이라고도 한다. 조선의 외교사절이 중국의 수도인 연경(燕京)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자 북경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보루로 인식되었다.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는 만리장성을 경계로 안쪽을 관내(關內), 밖을 관외(關外)라고 불렀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조선 지식인들은 이 관문에 들어서야 중화(中華)의 세계, 즉 문명의 세계로 들어선다고 생각하였다.
산해관 (山海關)
산해관은 전통시대 한중 외교 사행로에 위치한 중국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만리장성의 동쪽 관문이자 기점으로 유관(?關, ?關)이라고도 한다. 조선의 외교사절이 중국의 수도인 연경(燕京)에 가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자 북경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보루로 인식되었다. 중화와 오랑캐를 구분하는 만리장성을 경계로 안쪽을 관내(關內), 밖을 관외(關外)라고 불렀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조선 지식인들은 이 관문에 들어서야 중화(中華)의 세계, 즉 문명의 세계로 들어선다고 생각하였다.
통화는 길림성 동남부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고구려의 발원지이며 광개토왕릉비 등 고구려 유적이 밀집된 역사적인 도시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조선인들이 이주하였고, 1869년 대기근과 청나라의 봉금령 폐지 이후 본격화되었다. 1896년 제천 의병 계열 인물들이 정착하면서 항일운동 기지로 부상했다. 1946년 독립군과 중국 군대가 길림성 일대의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통화 사건으로 유명하다. 현재 통화시는 국가가 승인한 국경 개방 도시의 하나이다. 한족, 만주족, 조선족, 회족 등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다양한 산업이 발달해 있다.
통화 (通化)
통화는 길림성 동남부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고구려의 발원지이며 광개토왕릉비 등 고구려 유적이 밀집된 역사적인 도시이다. 19세기 중반부터 조선인들이 이주하였고, 1869년 대기근과 청나라의 봉금령 폐지 이후 본격화되었다. 1896년 제천 의병 계열 인물들이 정착하면서 항일운동 기지로 부상했다. 1946년 독립군과 중국 군대가 길림성 일대의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통화 사건으로 유명하다. 현재 통화시는 국가가 승인한 국경 개방 도시의 하나이다. 한족, 만주족, 조선족, 회족 등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다양한 산업이 발달해 있다.
화룡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남서부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원래 명칭은 화룡욕으로 ‘양쪽 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의 만주어라고 한다. 가장 큰 규모의 한인사회가 형성되었던 북간도의 연길, 왕청, 훈춘 등 4개 현의 중심이었다. 1910년 전후에 나철 등 대종교계열의 인물이 대거 망명하여 한인학교를 세우고 민족주의교육과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족을 비롯하여 한족, 만족, 몽고족, 회족, 묘족 등 11개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도시이다. 사물농악, 널뛰기, 씨름, 그네뛰기와 같은 조선족의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화룡 (和龍)
화룡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남서부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원래 명칭은 화룡욕으로 ‘양쪽 산 사이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의 만주어라고 한다. 가장 큰 규모의 한인사회가 형성되었던 북간도의 연길, 왕청, 훈춘 등 4개 현의 중심이었다. 1910년 전후에 나철 등 대종교계열의 인물이 대거 망명하여 한인학교를 세우고 민족주의교육과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족을 비롯하여 한족, 만족, 몽고족, 회족, 묘족 등 11개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도시이다. 사물농악, 널뛰기, 씨름, 그네뛰기와 같은 조선족의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밀산은 중국 흑룡강성 계서시(鷄西市)에 위치한 항일투쟁지이다. 산에 벌과 꿀이 넘쳐나는 곳이라고 하여 봉밀산(蜂蜜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독립운동에 적합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1909년 이상설 등의 위탁을 받고 이승희가 토지를 매입하여 조선인을 이주시키고, ‘한흥동(韓興洞)’을 세워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였다. 안창호는 신민회 단원을 파견하여 45만 평을 구입하여 조선인들을 집단 이주시키고 독립군의 군량미와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이후 밀산무관학교, 대한독립단, 대종교 총분사 등이 세워져 독립투쟁 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밀산 (密山)
밀산은 중국 흑룡강성 계서시(鷄西市)에 위치한 항일투쟁지이다. 산에 벌과 꿀이 넘쳐나는 곳이라고 하여 봉밀산(蜂蜜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독립운동에 적합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1909년 이상설 등의 위탁을 받고 이승희가 토지를 매입하여 조선인을 이주시키고, ‘한흥동(韓興洞)’을 세워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였다. 안창호는 신민회 단원을 파견하여 45만 평을 구입하여 조선인들을 집단 이주시키고 독립군의 군량미와 군자금을 마련하였다. 이후 밀산무관학교, 대한독립단, 대종교 총분사 등이 세워져 독립투쟁 활동의 근거지가 되었다.
고구려시대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國內城)이 위치했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집안 (集安)
고구려시대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國內城)이 위치했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흐르는 하천.
이도백하 (二道白河)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를 흐르는 하천.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백두산 아래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
안도 (安圖)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백두산 아래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
명월진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조선족의 대표적인 집거지역이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합작한 동북항일연군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가 설치·운영되었던 곳이다. 명월진은 여러 조선족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 이름에는 이주민들의 애환과 염원이 담겨 있다. 현재는 젊은이들이 한국과 중국 연안도시로 빠져나가 조선족 마을의 공동화가 진행되면서 한족들이 유입되고 있다. 명월진은 53개의 행정촌과 73개의 자연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검은귀버섯 양식으로 유명하다.
명월진 (明月鎭)
명월진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안도현에 위치한 조선족 집거지역이다.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조선족의 대표적인 집거지역이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합작한 동북항일연군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한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가 설치·운영되었던 곳이다. 명월진은 여러 조선족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을 이름에는 이주민들의 애환과 염원이 담겨 있다. 현재는 젊은이들이 한국과 중국 연안도시로 빠져나가 조선족 마을의 공동화가 진행되면서 한족들이 유입되고 있다. 명월진은 53개의 행정촌과 73개의 자연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검은귀버섯 양식으로 유명하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현에 위치한 항일투쟁지.
이도구 (二道溝)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현에 위치한 항일투쟁지.
한반도에서 만주로 향한 한민족의 주요 이주 경로였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 위치한 하천.
가야하 (嘎呀河)
한반도에서 만주로 향한 한민족의 주요 이주 경로였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 위치한 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