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안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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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축회는 1922년 4월 30일에 한반도 내 일본인 건축인들에 의해 결성된 건축단체이다. 발기 당시 회원들 대부분은 총독부의 관리·건축가·시공자 등 건축 관계자들이었다. 한인으로는 김응순이 유일했다. 9명의 이사가 있었으며 회장은 모두 총독부 건축 관료들이었다. 『조선과 건축』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다. 조선건축회 활동은 1929년까지 경성의 도시문제와 주택문제에 집중되었다. 이 단체는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존재했다. 이들의 기관지는 조선총독부의 정책과 일인들의 건축 활동을 연구하는 자료로 이용된다.
조선건축회 (朝鮮建築會)
조선건축회는 1922년 4월 30일에 한반도 내 일본인 건축인들에 의해 결성된 건축단체이다. 발기 당시 회원들 대부분은 총독부의 관리·건축가·시공자 등 건축 관계자들이었다. 한인으로는 김응순이 유일했다. 9명의 이사가 있었으며 회장은 모두 총독부 건축 관료들이었다. 『조선과 건축』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다. 조선건축회 활동은 1929년까지 경성의 도시문제와 주택문제에 집중되었다. 이 단체는 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존재했다. 이들의 기관지는 조선총독부의 정책과 일인들의 건축 활동을 연구하는 자료로 이용된다.
문화주택은 일제강점기에 서양 주택의 공간구조와 외관을 따라서 지은 주택이다. 개항 이후 전통주택의 비기능성·비경제성·비위생성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서양식 주택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서양식 주택, 일명 문화주택을 지었는데 문화주택의 중요한 기준은 위생이었다.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로 서구식 문화주택에 대한 선호는 새마을운동 시기까지 이어졌다. 전후 복구사업 중 공급된 공공주택은 서구식 거실 중심의 문화주택으로 지어졌다. 문화주택은 일제강점기에 위생을 매개로 새로운 유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문화주택 (文化住宅)
문화주택은 일제강점기에 서양 주택의 공간구조와 외관을 따라서 지은 주택이다. 개항 이후 전통주택의 비기능성·비경제성·비위생성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서양식 주택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서양식 주택, 일명 문화주택을 지었는데 문화주택의 중요한 기준은 위생이었다.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로 서구식 문화주택에 대한 선호는 새마을운동 시기까지 이어졌다. 전후 복구사업 중 공급된 공공주택은 서구식 거실 중심의 문화주택으로 지어졌다. 문화주택은 일제강점기에 위생을 매개로 새로운 유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
적산가옥 (敵産家屋)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
일제강점기 조선주택영단을 통해 건설된 주택형태.
영단주택 (營團住宅)
일제강점기 조선주택영단을 통해 건설된 주택형태.
대학제국기에 건립된 조적조 건물로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에 위치한 일본영사관 건물.
구 목포 일본영사관 (舊 木浦 日本領事館)
대학제국기에 건립된 조적조 건물로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에 위치한 일본영사관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