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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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코민테른의 자금 지원을 둘러싸고 발생한 사회주의 세력 간의 분규.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國際共産黨 資金事件)
1919년 코민테른의 자금 지원을 둘러싸고 발생한 사회주의 세력 간의 분규.
일제강점기 때, 무산자동맹, 화요회, 조선노농총맹, 조선공산당 등에서 활동한 공산주의자.
박일병 (朴一秉)
일제강점기 때, 무산자동맹, 화요회, 조선노농총맹, 조선공산당 등에서 활동한 공산주의자.
1869년(고종 6) 3월전라남도 광양에서 일어난 민란.
광양민란 (光陽民亂)
1869년(고종 6) 3월전라남도 광양에서 일어난 민란.
1889년 9월 전라도 광양에서 일어난 민란.
광양민란 (光陽民亂)
1889년 9월 전라도 광양에서 일어난 민란.
북성회는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 단체이다. 흑도회에서 분리한 김약수 등이 한국과 일본의 프롤레타리아의 결합을 굳게 하며 재일조선인노동자의 단일조합을 창설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국내에서 활동하기 위해 전진 기지로서 토요회, 건설사, 북풍회 등이 조직되었다. 순회 강연단을 편성하여 서울·평양·대구·광주·마산·진주·김해 등지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일본 사회주의운동지도자들을 초빙하여 한국과 일본 노동운동의 연계를 위해 월례집회를 열었다. 1925년 일본에 남아 있던 회원들이 새로운 대중 본위의 신사회 건설을 위해 북성회를 해산하고 일월회를 조직하였다.
북성회 (北星會)
북성회는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 단체이다. 흑도회에서 분리한 김약수 등이 한국과 일본의 프롤레타리아의 결합을 굳게 하며 재일조선인노동자의 단일조합을 창설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국내에서 활동하기 위해 전진 기지로서 토요회, 건설사, 북풍회 등이 조직되었다. 순회 강연단을 편성하여 서울·평양·대구·광주·마산·진주·김해 등지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일본 사회주의운동지도자들을 초빙하여 한국과 일본 노동운동의 연계를 위해 월례집회를 열었다. 1925년 일본에 남아 있던 회원들이 새로운 대중 본위의 신사회 건설을 위해 북성회를 해산하고 일월회를 조직하였다.
재일 한국인 사회주의단체인 북성회(北星會)의 국내지부로서 1924년 11월 25일에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운동단체.
북풍회 (北風會)
재일 한국인 사회주의단체인 북성회(北星會)의 국내지부로서 1924년 11월 25일에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운동단체.
정우회는 1926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 단체이다. 1925년 치안유지법이 공포되자 일제의 사회주의에 대한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화요회·북풍회·조선노동당·무산자동맹회가 결합하여 4단체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화요회가 주도하여 4단체합동위원회를 해체하고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정우회를 조직하였다. 1926년 6·10만세사건으로 궤멸될 위기에 놓였다가 동경의 사회주의 단체인 일월회 간부들의 참여로 활력을 되찾았다. 일월회의 주도로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여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 창립을 위한 준비를 완료하였다.
정우회 (正友會)
정우회는 1926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 단체이다. 1925년 치안유지법이 공포되자 일제의 사회주의에 대한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화요회·북풍회·조선노동당·무산자동맹회가 결합하여 4단체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화요회가 주도하여 4단체합동위원회를 해체하고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정우회를 조직하였다. 1926년 6·10만세사건으로 궤멸될 위기에 놓였다가 동경의 사회주의 단체인 일월회 간부들의 참여로 활력을 되찾았다. 일월회의 주도로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여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 창립을 위한 준비를 완료하였다.
조선민흥회는 1926년 7월 8일 서울청년회와 조선물산장려회가 중심이 되어 발기한 민족협동전선단체이다. 서울청년회의 사상단체인 전진회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민족당주비회(民族黨籌備會)에 참여하면서 국내의 협동전선을 위한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발기하였다. 한국 내의 민족협동전선 결성에 대한 열망과 해외민족유일당운동, 코민테른 노선 변화라는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다수의 민족주의 좌파와 조선공산당 및 그 관련 단체가 참여하지 않은 제한된 규모의 협동전선이었기 때문에 발기인대회에서 신간회와 합치자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신간회에 흡수되었다.
조선민흥회 (朝鮮民興會)
조선민흥회는 1926년 7월 8일 서울청년회와 조선물산장려회가 중심이 되어 발기한 민족협동전선단체이다. 서울청년회의 사상단체인 전진회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결성된 민족당주비회(民族黨籌備會)에 참여하면서 국내의 협동전선을 위한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 발기하였다. 한국 내의 민족협동전선 결성에 대한 열망과 해외민족유일당운동, 코민테른 노선 변화라는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다수의 민족주의 좌파와 조선공산당 및 그 관련 단체가 참여하지 않은 제한된 규모의 협동전선이었기 때문에 발기인대회에서 신간회와 합치자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신간회에 흡수되었다.
1926년 서울에서 조직된 사회단체 협의체.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朝鮮社會團體中央協議會)
1926년 서울에서 조직된 사회단체 협의체.
일월회는 1925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운동단체이다. 북성회의 회원 약 20명이 동경에서 레닌 사망 1주년을 기념해 북성회를 해산하고 조직하였다. 동경시외에 사무소를 두고 편집부·서무부를 두어 『사상운동』과 『대중신문』 등 기관지를 발간하였다. 재일동경무산청년동맹·삼월회·재일조선유학생학우회 등의 조직을 원조하였다. 국내운동의 파쟁을 지양하여 운동노선의 통일과 대동단결을 주장하였다. 1926년 노선이 동일한 정우회선에 따라 민족협동전선의 결성과 대중의 정치적 운동의 적극적 추진이라는 명분 아래 해체되었다.
일월회 (一月會)
일월회는 1925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운동단체이다. 북성회의 회원 약 20명이 동경에서 레닌 사망 1주년을 기념해 북성회를 해산하고 조직하였다. 동경시외에 사무소를 두고 편집부·서무부를 두어 『사상운동』과 『대중신문』 등 기관지를 발간하였다. 재일동경무산청년동맹·삼월회·재일조선유학생학우회 등의 조직을 원조하였다. 국내운동의 파쟁을 지양하여 운동노선의 통일과 대동단결을 주장하였다. 1926년 노선이 동일한 정우회선에 따라 민족협동전선의 결성과 대중의 정치적 운동의 적극적 추진이라는 명분 아래 해체되었다.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 단체.
화요회 (火曜會)
1924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 단체.
1921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운동단체.
흑도회 (黑濤會)
1921년 일본 동경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주의운동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