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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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관은 조선 후기, 의정부(議政府) 내의 공사색(公事色)에 배치된 종6품의 실무 관직이다. 1865년(고종 2), 비변사(備邊司)와 의정부가 통합되면서 비변사 낭청(郞廳)에서 하던 업무를 담당하였다. 정원은 11명이며 품계는 종6품이다. 참하관은 만 20개월 근무한 뒤 종6품 참상관으로 승진하였다. 주된 업무로는 업무 실태조사, 회의 참석여부 확인, 관직 후보자 추천 접수 등을 담당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의정부가 폐지되면서 공사관도 함께 폐지되었다.
공사관 (公事官)
공사관은 조선 후기, 의정부(議政府) 내의 공사색(公事色)에 배치된 종6품의 실무 관직이다. 1865년(고종 2), 비변사(備邊司)와 의정부가 통합되면서 비변사 낭청(郞廳)에서 하던 업무를 담당하였다. 정원은 11명이며 품계는 종6품이다. 참하관은 만 20개월 근무한 뒤 종6품 참상관으로 승진하였다. 주된 업무로는 업무 실태조사, 회의 참석여부 확인, 관직 후보자 추천 접수 등을 담당하였다. 1895년(고종 32)에 의정부가 폐지되면서 공사관도 함께 폐지되었다.
구관당상은 조선 후기, 비변사 제조 중 변통 사무를 담당하던 관직이다. 계차에 따라 선임되고 정원은 없었다. 초기에는 주로 군사 관련 사안이 많았으나 점차 사회 경제적 사안으로 확대되었다. 팔도 구관당상은 비변사 제조 중 각 도의 사무에 익숙한 자를 차출하였고, 유사당상이 구관당상을 도와 각 도의 사무를 살폈다. 이로 인해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
구관당상 (勾管堂上)
구관당상은 조선 후기, 비변사 제조 중 변통 사무를 담당하던 관직이다. 계차에 따라 선임되고 정원은 없었다. 초기에는 주로 군사 관련 사안이 많았으나 점차 사회 경제적 사안으로 확대되었다. 팔도 구관당상은 비변사 제조 중 각 도의 사무에 익숙한 자를 차출하였고, 유사당상이 구관당상을 도와 각 도의 사무를 살폈다. 이로 인해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이 강화되었다.
박만정은 조선 후기 삼사(三司)의 주요 직책과 회양부사, 황해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윤휴의 문인이며, 생원시와 문과에 입격하였다. 관직으로는 성균관 및 삼사인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요직을 거쳐 시강원보덕, 회양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왕세자 보호 차원에서 장희빈에게 궁호를 별도로 세우자고 주장하였고, 황해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해서암행일기』를 저술하였다.
박만정 (朴萬鼎)
박만정은 조선 후기 삼사(三司)의 주요 직책과 회양부사, 황해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윤휴의 문인이며, 생원시와 문과에 입격하였다. 관직으로는 성균관 및 삼사인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요직을 거쳐 시강원보덕, 회양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왕세자 보호 차원에서 장희빈에게 궁호를 별도로 세우자고 주장하였고, 황해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해서암행일기』를 저술하였다.
이재항은 조선 후기 평안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종실 집안이며, 당대 집권자인 이이명·김진규와 밀접한 관계이다. 관직으로는 주로 무관직과 외직을 역임하면서 순무영 개편, 통영곡 운영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다. 충효를 실천하였고, 글씨로 이름을 떨쳤다.
이재항 (李載恒)
이재항은 조선 후기 평안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종실 집안이며, 당대 집권자인 이이명·김진규와 밀접한 관계이다. 관직으로는 주로 무관직과 외직을 역임하면서 순무영 개편, 통영곡 운영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다. 충효를 실천하였고, 글씨로 이름을 떨쳤다.
허경은 조선 후기에 승지와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종실 가문으로 인평대군의 손자 의원군 이혁이 생질이다. 숙종 때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였고, 홍문도당록에 오를 정도로 학문이 뛰어나 주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관직으로는 3사의 요직을 거쳐 경주부윤, 강릉부사 등 주로 외직을 역임하였으나 중앙의 고위직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저술로는 시와 만사 등이 있다.
허경 (許熲)
허경은 조선 후기에 승지와 경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종실 가문으로 인평대군의 손자 의원군 이혁이 생질이다. 숙종 때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였고, 홍문도당록에 오를 정도로 학문이 뛰어나 주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관직으로는 3사의 요직을 거쳐 경주부윤, 강릉부사 등 주로 외직을 역임하였으나 중앙의 고위직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저술로는 시와 만사 등이 있다.
1987년 3월에 광주에서 설립된 역사연구 학술단체.
전남사학회 (全南史學會)
1987년 3월에 광주에서 설립된 역사연구 학술단체.
조선시대 죄수를 관장하던 관서.
전옥서 (典獄署)
조선시대 죄수를 관장하던 관서.
조선시대의 경찰기관인 포도청(捕盜廳)의 종2품 관직.
포도대장 (捕盜大將)
조선시대의 경찰기관인 포도청(捕盜廳)의 종2품 관직.
조선시대 죄인의 심문과 도적의 포획 및 도적·화재 예방을 위해 순찰 등의 일을 맡았던 관서.
포도청 (捕盜廳)
조선시대 죄인의 심문과 도적의 포획 및 도적·화재 예방을 위해 순찰 등의 일을 맡았던 관서.
의금부는 조선시대, 죄인 심문을 담당한 특별사법 관청이다. 조옥·금부·왕부·금오라고도 하였다. 여말선초에 군사적 기능과 사법 기능을 가진 기구로서 왕조 창립에 기여하다가 태종 때 사법 전담기관으로 독립하였다. 의금부가 맡은 사법 기능은 반란·음모·난언·요언 처단, 유교 도덕에 어긋나는 강상죄 처벌, 왕의 교지를 받들어 하는 추국, 재심 혹은 삼심 기관의 역할, 양반관료의 범죄, 대외관계 범죄, 외국인의 무례한 행위와 범죄 처벌, 밀무역 사범 단속, 외국 공관 감시 등이었다. 갑오경장 때 의금사로 이름이 바뀌고, 이후 고등재판소로 바뀌었다가 1899년에 평리원으로 개편되었다.
의금부 (義禁府)
의금부는 조선시대, 죄인 심문을 담당한 특별사법 관청이다. 조옥·금부·왕부·금오라고도 하였다. 여말선초에 군사적 기능과 사법 기능을 가진 기구로서 왕조 창립에 기여하다가 태종 때 사법 전담기관으로 독립하였다. 의금부가 맡은 사법 기능은 반란·음모·난언·요언 처단, 유교 도덕에 어긋나는 강상죄 처벌, 왕의 교지를 받들어 하는 추국, 재심 혹은 삼심 기관의 역할, 양반관료의 범죄, 대외관계 범죄, 외국인의 무례한 행위와 범죄 처벌, 밀무역 사범 단속, 외국 공관 감시 등이었다. 갑오경장 때 의금사로 이름이 바뀌고, 이후 고등재판소로 바뀌었다가 1899년에 평리원으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