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전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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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석의 놀이는 조선조 명종 때, 서울에 살던 배우 귀석(貴石)이 행한 '진상놀이'와 '시예종실놀이' 등 골계적인 내용의 우희이다. 진상놀이는 항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꾸며 보여 준 시사풍자극으로서, 이조판서와 병조판서가 뇌물을 받고 관리의 승진을 추천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시예종실놀이는 시예 종실인 주인과 재상의 대조적인 모습을 상황극을 통해 나타내며, 주인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귀석의 놀이 (貴石의 놀이)
귀석의 놀이는 조선조 명종 때, 서울에 살던 배우 귀석(貴石)이 행한 '진상놀이'와 '시예종실놀이' 등 골계적인 내용의 우희이다. 진상놀이는 항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꾸며 보여 준 시사풍자극으로서, 이조판서와 병조판서가 뇌물을 받고 관리의 승진을 추천하는 내용을 다루었다. 시예종실놀이는 시예 종실인 주인과 재상의 대조적인 모습을 상황극을 통해 나타내며, 주인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민속극은 민간 전승의 연극으로서 음악·무용·연기·언어 등이 조화된 종합 예술이다. 민중들의 생활상 필요에서 생겨나서, 공동으로 보존하고 재창조한 연극이다. 한국의 민속극은 가면극, 꼭두각시놀음, 무당굿 놀이, 발탈, 진도 다시래기 등이 있다. 이외에도 우희(優戱, 골계희), 만석중놀이(그림자 인형극) 등 다양한 민속극의 전통이 있었다.
민속극 (民俗劇)
민속극은 민간 전승의 연극으로서 음악·무용·연기·언어 등이 조화된 종합 예술이다. 민중들의 생활상 필요에서 생겨나서, 공동으로 보존하고 재창조한 연극이다. 한국의 민속극은 가면극, 꼭두각시놀음, 무당굿 놀이, 발탈, 진도 다시래기 등이 있다. 이외에도 우희(優戱, 골계희), 만석중놀이(그림자 인형극) 등 다양한 민속극의 전통이 있었다.
봉산탈춤은 1915년경부터 황해도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서 전승되던 것이 사리원으로 옮겨가 전승된 대표적인 해서탈춤이다. 1915년 무렵 군청 등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이전하자, 가면극도 함께 사리원으로 옮겨가 전승되었다. 6·25 때 월남해 온 김진옥, 민천식 등의 고증에 의해 봉산탈춤이 복원되어 전승되다가,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봉산탈춤 (鳳山탈춤)
봉산탈춤은 1915년경부터 황해도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서 전승되던 것이 사리원으로 옮겨가 전승된 대표적인 해서탈춤이다. 1915년 무렵 군청 등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이전하자, 가면극도 함께 사리원으로 옮겨가 전승되었다. 6·25 때 월남해 온 김진옥, 민천식 등의 고증에 의해 봉산탈춤이 복원되어 전승되다가,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북청사자놀음은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에서 사자놀이패가 정월 4일부터 14일까지 지신밟기를 하고 대보름 밤에 연행하던 사자놀이이다. 원래 함경남도 북청군의 전 지역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 행해지던 민속극으로서,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주로 함경도 출신 월남민들이 거주하는 속초시 동호동 아바이 마을을 중심으로 복원된 속초 사자놀이는 2019년에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북청사자놀음 (北靑獅子놀음)
북청사자놀음은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에서 사자놀이패가 정월 4일부터 14일까지 지신밟기를 하고 대보름 밤에 연행하던 사자놀이이다. 원래 함경남도 북청군의 전 지역에서 세시풍속의 하나로 행해지던 민속극으로서,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주로 함경도 출신 월남민들이 거주하는 속초시 동호동 아바이 마을을 중심으로 복원된 속초 사자놀이는 2019년에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산대는 전통 연희를 동반하던 봉래산 형태의 무대 구조물이다. 산대에는 고정형 대형 산대인 대산대(大山臺), 이동형 소형 산대인 산붕(山棚), 다정산대(茶亭山臺)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신라 진흥왕 이래, 팔관회와 고려시대의 연등회를 거행할 때 산대 또는 채붕 앞에서 가무백희(歌舞百戱)를 연행했다. 산대희는 전통 사회에서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들이 흥행을 위해 관중을 상대로 연행하던 공연 예술인데, 중국 사신 영접 행사, 왕의 환궁 행사, 내농작 등에서 산대를 설치하고 이것을 공연하면 산대희라고 불렀다.
산대 (山臺)
산대는 전통 연희를 동반하던 봉래산 형태의 무대 구조물이다. 산대에는 고정형 대형 산대인 대산대(大山臺), 이동형 소형 산대인 산붕(山棚), 다정산대(茶亭山臺)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신라 진흥왕 이래, 팔관회와 고려시대의 연등회를 거행할 때 산대 또는 채붕 앞에서 가무백희(歌舞百戱)를 연행했다. 산대희는 전통 사회에서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연희자들이 흥행을 위해 관중을 상대로 연행하던 공연 예술인데, 중국 사신 영접 행사, 왕의 환궁 행사, 내농작 등에서 산대를 설치하고 이것을 공연하면 산대희라고 불렀다.
산대극은 흔히 본산대놀이라고 부르는 산대도감에 동원되던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다. 조선 전기에 중국 사신 영접 행사, 왕의 환궁 행사, 내농작 등에서 산대를 설치하고 연행한 각종 잡희를 산대희라고 불렀다. 산대도감극은 이런 행사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했던 나례도감(儺禮都監)이나 산대도감(山臺都監)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산대도감극은 산대희로부터 생겨난 가면극을 가리킨다. 산대도감극을 줄여 ‘산대극’이라고 부른다.
산대극 (山臺劇)
산대극은 흔히 본산대놀이라고 부르는 산대도감에 동원되던 연희자들이 전승하던 가면극이다. 조선 전기에 중국 사신 영접 행사, 왕의 환궁 행사, 내농작 등에서 산대를 설치하고 연행한 각종 잡희를 산대희라고 불렀다. 산대도감극은 이런 행사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했던 나례도감(儺禮都監)이나 산대도감(山臺都監)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산대도감극은 산대희로부터 생겨난 가면극을 가리킨다. 산대도감극을 줄여 ‘산대극’이라고 부른다.
산대잡극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산대 앞에서 연행된 연희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헌에 백희·가무백희(歌舞百戱)·잡희(雜戱)·백희잡기(百戲雜技) 등으로 기록된 연희들을 나례(儺禮)에서 연행하면 나례(儺禮)·나희(儺戱)·나(儺) 등으로 불렀으며, 산대 앞에서 연행하면 산대잡극(山臺雜劇)·산대희(山臺戱)·산대나례(山臺儺禮) 등으로 불렀다.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33권에 실린 시 「동대문부터 대궐 문전까지의 산대잡극은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다[自東大門至闕門前山臺雜劇前所未見也]」에 사용되었다.
산대잡극 (山臺雜劇)
산대잡극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산대 앞에서 연행된 연희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헌에 백희·가무백희(歌舞百戱)·잡희(雜戱)·백희잡기(百戲雜技) 등으로 기록된 연희들을 나례(儺禮)에서 연행하면 나례(儺禮)·나희(儺戱)·나(儺) 등으로 불렀으며, 산대 앞에서 연행하면 산대잡극(山臺雜劇)·산대희(山臺戱)·산대나례(山臺儺禮) 등으로 불렀다.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33권에 실린 시 「동대문부터 대궐 문전까지의 산대잡극은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다[自東大門至闕門前山臺雜劇前所未見也]」에 사용되었다.
산악백희는 삼국 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민간 잡희(雜戱)의 총칭이다. 산악은 중국 고대의 악무(樂舞)를 지칭하는 용어로, 원래 주(周)나라의 민간 악무를 일컫던 말이다. 남북조를 거치면서 주로 수당대에 백희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산악 또는 백희라고 부르던 연희들을 우리나라에서는 백희, 가무백희, 백희잡기, 잡희, 산대잡극, 산대희, 나희 등으로 불러왔다. 조선 후기에 민간을 떠돌면서 공연했던 유랑 예인집단들의 연희도 산악백희에 해당한다.
산악백희 (散樂百戱)
산악백희는 삼국 시대에 중국과 서역으로부터 유입된 전문적 연희자들이 연행하던 민간 잡희(雜戱)의 총칭이다. 산악은 중국 고대의 악무(樂舞)를 지칭하는 용어로, 원래 주(周)나라의 민간 악무를 일컫던 말이다. 남북조를 거치면서 주로 수당대에 백희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중국에서 산악 또는 백희라고 부르던 연희들을 우리나라에서는 백희, 가무백희, 백희잡기, 잡희, 산대잡극, 산대희, 나희 등으로 불러왔다. 조선 후기에 민간을 떠돌면서 공연했던 유랑 예인집단들의 연희도 산악백희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