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조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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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康津) 지석리(支石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1967년 국립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언덕 위에 10여 기의 고인돌들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동남쪽 끝에 있는 고인돌을 조사하였다. 이 고인돌의 돌널은 일부 파괴되었지만, 판돌로 짜서 만들었다.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로 보아 남방식의 일종인 뚜껑식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강진 지석리 고인돌 (康津 支石里 고인돌)
강진(康津) 지석리(支石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1967년 국립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언덕 위에 10여 기의 고인돌들이 분포하고 있었는데, 동남쪽 끝에 있는 고인돌을 조사하였다. 이 고인돌의 돌널은 일부 파괴되었지만, 판돌로 짜서 만들었다.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로 보아 남방식의 일종인 뚜껑식으로 판단된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고흥(高興) 운대리(雲袋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4기의 고인돌이 발굴되었지만,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고인돌 부근에서 돌널이 조사되었는데, 비파형동검 조각이 출토되었다. 1999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운대리 중대마을 입구에 있는 고인돌 24기를 발굴 조사하였는데, 13호 고인돌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고흥 운대리 고인돌 (高興 雲袋里 고인돌)
고흥(高興) 운대리(雲袋里) 고인돌은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4기의 고인돌이 발굴되었지만,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고인돌 부근에서 돌널이 조사되었는데, 비파형동검 조각이 출토되었다. 1999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운대리 중대마을 입구에 있는 고인돌 24기를 발굴 조사하였는데, 13호 고인돌에서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다.
고흥중산리지석묘군(高興中山里支石墓群)은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고흥 중산리 일대에는 고인돌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그 중 고흥중산리지석묘군은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고흥 중산리 중산 지석묘Ⅰ과 고흥 중산리 운교 지석묘Ⅰ은 고흥-벌교 간 국도 확 · 포장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간돌검, 돌살촉, 돌도끼, 돌끌, 돌낫, 구슬옥, 붉은간토기, 검은간토기,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고흥 중산리 지석묘군 (高興 中山里 支石墓群)
고흥중산리지석묘군(高興中山里支石墓群)은 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고흥 중산리 일대에는 고인돌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그 중 고흥중산리지석묘군은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고흥 중산리 중산 지석묘Ⅰ과 고흥 중산리 운교 지석묘Ⅰ은 고흥-벌교 간 국도 확 · 포장공사 구간에 포함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간돌검, 돌살촉, 돌도끼, 돌끌, 돌낫, 구슬옥, 붉은간토기, 검은간토기, 민무늬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광주(光州) 충효동(忠孝洞)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광주 충효동 성안 고인돌’이라고 하기도 한다. 7기의 고인돌이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는데, 1977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그 중 6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덮개돌은 11~28톤 정도이며, 모두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이다. 민무늬토기 조각, 붉은간토기 조각, 돌살촉, 숫돌 등 3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광주 충효동 고인돌 (光州 忠孝洞 고인돌)
광주(光州) 충효동(忠孝洞) 고인돌은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광주 충효동 성안 고인돌’이라고 하기도 한다. 7기의 고인돌이 동서 방향으로 분포하는데, 1977년 전남대학교박물관에서 그 중 6기를 발굴 조사하였다. 덮개돌은 11~28톤 정도이며, 모두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이다. 민무늬토기 조각, 붉은간토기 조각, 돌살촉, 숫돌 등 3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동모(銅矛)는 청동제 창머리에 달린 투겁에 긴 나무 자루를 끼워 조합해서 만든, 적을 찌르는 데 쓰는 무기이다. 197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동모 중 하나는 전체 길이 39.5㎝, 몸통 최대 너비 3.7㎝, 투겁부 지름 3.2㎝이며, 몸통이 날렵하게 생겼다. 다른 하나는 전체 길이 38.5㎝, 몸통 최대 너비 5.1㎝, 투겁부 지름 4.4㎝이며, 투겁부 끝에 반원형의 귀가 두 개 달려 있다.
동모 (銅矛)
동모(銅矛)는 청동제 창머리에 달린 투겁에 긴 나무 자루를 끼워 조합해서 만든, 적을 찌르는 데 쓰는 무기이다. 1972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동모 중 하나는 전체 길이 39.5㎝, 몸통 최대 너비 3.7㎝, 투겁부 지름 3.2㎝이며, 몸통이 날렵하게 생겼다. 다른 하나는 전체 길이 38.5㎝, 몸통 최대 너비 5.1㎝, 투겁부 지름 4.4㎝이며, 투겁부 끝에 반원형의 귀가 두 개 달려 있다.
동촉(銅鏃)은 청동으로 만든 화살촉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다. 동촉은 슴베가 있는 유경식, 슴베가 없는 무경식, 투겁이 있는 유공식으로 구분되는데, 유경식과 유공식이 대부분이다. 유경식은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등장해서 비파형동검 문화까지 주로 사용되며, 유공식은 비파형동검 문화 중기에 등장한다. 철경 동촉은 세형동검 문화 후기에 주로 확인된다.
동촉 (銅鏃)
동촉(銅鏃)은 청동으로 만든 화살촉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다. 동촉은 슴베가 있는 유경식, 슴베가 없는 무경식, 투겁이 있는 유공식으로 구분되는데, 유경식과 유공식이 대부분이다. 유경식은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등장해서 비파형동검 문화까지 주로 사용되며, 유공식은 비파형동검 문화 중기에 등장한다. 철경 동촉은 세형동검 문화 후기에 주로 확인된다.
배천월암리고인돌은 황해남도 배천군 용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용동리는 과거 월암리라 하였다. 해월산 남쪽에 19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9기는 비교적 잘 남아 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파괴되었다. 가장 큰 1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크기가 길이 690㎝, 너비 530㎝, 두께 100㎝이며, 무덤 칸의 크기는 길이 210㎝, 너비 130㎝, 높이 210㎝이다.
배천 월암리 고인돌 (白川 月岩里 고인돌)
배천월암리고인돌은 황해남도 배천군 용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다. 용동리는 과거 월암리라 하였다. 해월산 남쪽에 19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9기는 비교적 잘 남아 있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파괴되었다. 가장 큰 1호 고인돌은 덮개돌의 크기가 길이 690㎝, 너비 530㎝, 두께 100㎝이며, 무덤 칸의 크기는 길이 210㎝, 너비 130㎝, 높이 210㎝이다.
북청토성리유적은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 일대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유적 · 유물들이 자주 확인되었다. 1982년에는 청동기시대 집터 2기가 발굴되었다. 특히 2호 집터에서는 청동부채도끼, 청동끌, 청동방울, 청동토시 등 청동기 20여 점과 돌단검, 돌살촉, 돌도끼, 돌대패날, 돌끌, 갈색간그릇, 검정간그릇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금야-토성리 문화 유형을 대표한다.
북청 토성리 유적 (北靑 土城里 遺蹟)
북청토성리유적은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함경남도 북청군 토성리 일대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의 유적 · 유물들이 자주 확인되었다. 1982년에는 청동기시대 집터 2기가 발굴되었다. 특히 2호 집터에서는 청동부채도끼, 청동끌, 청동방울, 청동토시 등 청동기 20여 점과 돌단검, 돌살촉, 돌도끼, 돌대패날, 돌끌, 갈색간그릇, 검정간그릇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어 금야-토성리 문화 유형을 대표한다.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
안테나식 동검 (antenna式 銅劍)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
칼자루끝장식은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 거쳐 돌이나 청동으로 만든 것을 비파형동검이나 세형동검의 칼자루 끝에 장착한 장식이다. 동검의 찌르는 힘을 키우는 역할을 강조해서 가중기라고도 하며, 장식성을 강조해서 검파두식이라고도 한다. 요서 지역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베개 모양, 요동과 한반도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말발굽 모양이 유행하고,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에는 기둥이 세워진 십자 모양이나 십자 모양이 많다.
칼자루 끝 장식 (칼자루 끝 裝飾)
칼자루끝장식은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 거쳐 돌이나 청동으로 만든 것을 비파형동검이나 세형동검의 칼자루 끝에 장착한 장식이다. 동검의 찌르는 힘을 키우는 역할을 강조해서 가중기라고도 하며, 장식성을 강조해서 검파두식이라고도 한다. 요서 지역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베개 모양, 요동과 한반도 비파형동검 문화에서는 말발굽 모양이 유행하고, 한반도 세형동검 문화에는 기둥이 세워진 십자 모양이나 십자 모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