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한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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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내무부 주사, 홍문관 교리, 운산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이계필 (李啓弼)
개항기 내무부 주사, 홍문관 교리, 운산군수 등을 역임한 관료.
1896년 인천항에 설립된 폭력적인 대상(隊商) 조직 형태의 일본인 내지 행상 단체.
계림장업단 (鷄林奬業團)
1896년 인천항에 설립된 폭력적인 대상(隊商) 조직 형태의 일본인 내지 행상 단체.
1906년 5월 10일 로스앤젤레스시(나성)에서 한국인들이 설립한 최초의 장로교회.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羅城韓人聯合長老敎會)
1906년 5월 10일 로스앤젤레스시(나성)에서 한국인들이 설립한 최초의 장로교회.
1991년 로스앤젤레스 문화사적지로 지정된 국민회관 앞길.
LA 도산 안창호 거리 (LA 島山 安昌浩 거리)
1991년 로스앤젤레스 문화사적지로 지정된 국민회관 앞길.
1883∼1884년간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과 유럽국가에 파견된 외교사절단.
보빙사절단 (報聘使節團)
1883∼1884년간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과 유럽국가에 파견된 외교사절단.
주미한국공사는 1887년부터 1906년까지 자주외교와 친미정책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공사관이다. 갑신정변 후 중국이 조선의 국정 전반에 간섭하자, 조선은 자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였다. 그후 이하영·이완용·이채연 등이 대리공사로 임명되었다.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될 때까지 미국에 주재하면서 외교 현안을 처리하고 중국과 일본 등의 내정간섭과 침략을 견제하기 위한 자주외교를 펼쳤다. 정부의 요직에 발탁되어 갑오개혁·독립협회운동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일부는 친일파로 변신하였다.
주미한국공사 (駐美韓國公司)
주미한국공사는 1887년부터 1906년까지 자주외교와 친미정책을 펼치기 위해 미국에 파견된 공사관이다. 갑신정변 후 중국이 조선의 국정 전반에 간섭하자, 조선은 자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하였다. 그후 이하영·이완용·이채연 등이 대리공사로 임명되었다.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될 때까지 미국에 주재하면서 외교 현안을 처리하고 중국과 일본 등의 내정간섭과 침략을 견제하기 위한 자주외교를 펼쳤다. 정부의 요직에 발탁되어 갑오개혁·독립협회운동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일부는 친일파로 변신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의 주필, 주미 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한인재단 총무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김원용 (金元容)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기관지의 주필, 주미 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한인재단 총무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김형제상회는 1921년경 미국 중가주 리들리시에 김호와 김형순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다. 김형순은 1903년 최초의 미국 이민자가 하와이로 갔을 때 통역관 겸 인솔자가 되었으며, 1916년부터 리들리에 정착, 묘목회사를 설립하고 과수원도 경영하였다. 김형제상회는 김형순이 김호와 동업으로 설립한 회사로 털없는 복숭아 신품종인 넥타린 개발하고 묘목과 과일을 판매해 성공을 거두었다. 김형제상회는 한인사회를 발전시키고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독자적 경제기반을 갖는 부업형 독립운동가로서 조직을 중시하는 총무형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형제상회 (金兄弟商會)
김형제상회는 1921년경 미국 중가주 리들리시에 김호와 김형순에 의해 설립된 회사이다. 김형순은 1903년 최초의 미국 이민자가 하와이로 갔을 때 통역관 겸 인솔자가 되었으며, 1916년부터 리들리에 정착, 묘목회사를 설립하고 과수원도 경영하였다. 김형제상회는 김형순이 김호와 동업으로 설립한 회사로 털없는 복숭아 신품종인 넥타린 개발하고 묘목과 과일을 판매해 성공을 거두었다. 김형제상회는 한인사회를 발전시키고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독자적 경제기반을 갖는 부업형 독립운동가로서 조직을 중시하는 총무형 지도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신흥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미국에서 대한인동지회 총회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위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사업가·독립운동가.
송철 (宋喆)
일제강점기 때, 신흥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미국에서 대한인동지회 총회장,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위원 등을 역임한 교육자·사업가·독립운동가.
1942년 8월 29일 국기(태극기)를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청의 깃대에 게양한 행사.
태극기 현기식 (太極旗 懸旗式)
1942년 8월 29일 국기(태극기)를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청의 깃대에 게양한 행사.
김호는 일제 강점기 때,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으며 해방 이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에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후원하기 위해 노동사회개진당을 조직하였다. 1921년 복숭아 재배와 신품종 개발로 부자가 되어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다. 광복 후 귀국하여 민주독립당과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하였으나 이승만이 집권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끌었다.
김호 (金乎)
김호는 일제 강점기 때,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으며 해방 이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끈 독립운동가이다. 1884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에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을 후원하기 위해 노동사회개진당을 조직하였다. 1921년 복숭아 재배와 신품종 개발로 부자가 되어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장학사업을 펼쳤다. 광복 후 귀국하여 민주독립당과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하였으나 이승만이 집권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장을 맡아 한인사회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