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년(고종 5) 거란의 유족(遺族)들이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 장군 이돈수(李敦守)와 함께 적을 격파하는 공을 세웠다.
1223년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오수기(吳壽祺), 장군 최유공(崔愈恭) 등과 문신들에 대한 주살을 모의한 것이 발각되어 명주부사(溟州副使)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상장군 최유공, 대장군 이극인(李克仁) 등과 함께 당시의 집정자 최우(崔瑀)를 제거하려고 모의하였다가 일이 누설되어 도리어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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