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문자
개념
사람의 생각을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
내용 요약

말은 사람의 생각을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이다. 말은 소리와 그것이 나타내는 뜻(개념)의 양면을 지닌 기호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사람은 말을 할 수 있으며, 말은 음운체계나 문법체계 등이 잘 발달되어 있다. 말은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소리로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재료가 된다. 말의 특징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인데, 일반적으로 말의 접촉 결과는 단어의 차용으로 나타난다. 말을 적는 시각적 기호인 글은 말의 표현이 더욱 정확하고 세련되게 된 것이다. 말은 5-6백만 년 전부터 100만 년 전쯤 출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세계에 5,000을 넘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정의
사람의 생각을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나타내는 소리.
개설

사람의 주8에서 목숨을 지키는 데 필요한 공기와 음식을 빼놓고, 말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말만큼 삶과 밀착된 것도 없다. 사람은 낮에 깨어 있을 때 말을 할 뿐 아니라 밤에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꾼다. 말이 없는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데 말은 사람만이 한다. 모든 동물 중에서 인류만이 말을 한다.

동물들 중에는 울음소리로 뜻을 전달하는 것도 있지만, 그 신호가 자연 그대로요 언제나 그 현장에 국한되어 있음에 대하여, 사람의 말은 완전히 기호화(記號化)되어 있어 현장을 떠난 곳에서도, 심지어는 공상(空想) 속에서도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말을 하는 동물은 인류뿐이다.

실로, 사람이 하는 모든 일 중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신비로운 일은 없다. 인류의 능력이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나다고 하나, 말을 하는 일은 너무나 동떠서 인류가 동물로부터 진화했다고는 믿을 수 없게 한다. 인류는 애초부터 특수한 존재였다는 생각이 예로부터 있어 왔는데, 말하는 능력이 이런 생각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실로 인류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 된 주9는 말을 하게 된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이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말(언어)은 몇이나 될까. 얼핏 나라의 수효만큼 될 것으로 짐작하고 국제연합(E0006469) 회원국의 숫자를 떠올리기 쉽다. 특히 우리와 같이 온 나라가 한 말을 하는 경우에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세계에는 한 나라 안에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사는 경우가 많다.

반세기쯤 전만 해도 이 세계에는 2,000 안팎의 말이 있다고 말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 언어학자)들의 책이나 논문에 쓰여 있었는데, 탐사 연구가 진전할수록 이 수효가 늘어 최근에는 5,000을 넘는다는 보고가 있다. 이 많은 말들을,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수로 보면 큰 차이가 있다. 몇 억으로 셀 수 있는 중국어나 영어와 같은 큰 말이 있는가 하면 시베리아에 흩어져 있는 퉁구스 계통의 말들과 같이 기껏 몇 만, 몇 천, 심지어는 몇 백으로 셀 수 있는 작은 말들도 있다.

우리 민족이 쓰고 있는 말(한국어)은 어떤가. 몇째라고 꼭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열다섯 안에는 드는 매우 큰 말들 중의 하나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이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만큼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특히 우리말을 잘 지키고 갈고 닦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말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위에서 말을 하는 동물은 인류뿐임을 지적했지만, 지금까지 언어학자들이 인류의 여러 말을 연구한 결과로 드러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든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인류치고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 지구 위에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발달의 정도에 있어서 모든 말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높은 문화를 가진 민족의 말은 발달의 정도가 높고 낮은 문화를 가진 미개 민족의 말은 발달의 정도가 낮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기 쉬운데, 지금까지 학자들이 조사한 모든 말은, 하나도 예외 없이, 잘 발달된 것임이 판명된 바 있다. 도리어, 미개 민족의 말들 중에는 언어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정교한 문법체계를 가진 것도 있음이 드러난 바 있다.

말의 기원

도대체 이 많은 말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말의 기원(起源)에 대한 호기심은 아득한 옛날에도 컸던 듯, 여러 나라의 신화종교 경전에 신(神)이 만들었다, 신이 사람을 시켜 만들었다, 또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는 여러 이야기가 전함을 본다.

고대와 중세에는 단일기원설(單一起源說)이 우세하였다. 그리하여 이미 고대로부터 인류가 맨처음 쓴 말은 어느 것이었을까 하는 문제를 풀어 보려고 애를 쓴 흔적이 보인다.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의 한 역사가가 적은 바에 의하면 이집트의 한 임금이 두 갓난애를 산속 오막살이에 가두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관찰하게 했는데 그 첫 말이 ‘베코스(bekos)’였고, 학자들에게 연구하게 한 끝에, 이것은 옛 주1의 언어에서 빵을 의미한 단어였음이 밝혀져, 프리기아어가 인류 최초의 말이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보다 2,000년쯤 뒤에 스코틀랜드의 왕은 비슷한 실험을 통하여 주10에서는 주11를 썼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逸話)를 들자면 여럿 있지만, 이와는 달리, 유럽 학자들은 17, 18세기 이래 말의 기원에 관한 여러 가설(假說)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조금 오랜 것으로는 의성어(擬聲語)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흉내낸 데서 기원하였으리라는 주12이 있었고 그 뒤에는 놀라움이나 기쁨 같은 느낌에서 자연히 우러나오는 소리에서 기원하였으리라는 감탄사설(Pooh-pooh theory), 여럿이 함께 노동하면서 지른 소리나 노래에서 나왔으리라는 노동요설(Yoo-hee-hoo theory) 등이 있었고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원시 사회에서 서로 접촉하거나 도움을 청하거나 함께 노동을 하는 과정에 몸짓에 따른 목소리가 점차 발달했으리라는 설 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도 말의 기원은 신비의 장막에 싸여 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0만년전, 좀 길게 잡으면 5,6백만년전에 출현했다고 보고 있다.

말 배움

그런데 현대의 우리들이 알고 있는 말의 역사에 관한 지식은 5 · 6천년밖에 안 된다. 인류가 글자를 만들어 쓴 역사가 이렇게 짧은 것이다. 그러니 인류가 말을 하기 시작한 초기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어떤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다만 사람의 두뇌의 발달과 말의 발달이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이므로 앞으로 이 방향의 연구에 기대를 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말의 신비는 까마득한 기원뿐 아니라 그 전승에도 있다. 지금까지 대대로 어린이들이 말을 배워서 쓰는 그 놀라운 능력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 울기부터 한다. 이 울음은 장차 말을 하기 위하여 목청을 고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상한 소리를 내어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걱정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쳐 마침내 재롱을 부리기에 이른다.

조금 일되고 늦됨의 차이가 있어 그 시기가 들쭉날쭉하고 성격의 차이가 있어 귀여움이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 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재롱둥이가 되지 않는 아이는 없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고들 생각한다. 누구나 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을 배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말이란 여간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 아니다.

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아직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말의 구조다. 나이 들어 외국어를 배워 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경험했을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주2만큼 유창하게 말하기는 바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누구나 어려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모어를 배워서 쓰고 있는 사실은 인간의 다른 모든 학습 능력을 초월하는 특수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어린 아이가 어떻게 말을 배우는가를 설명해 보려고 한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그런 특수한 능력을 타고난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연구가 얻은 해답이라면 해답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과학적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의 이치를 행동의 관찰을 통해서 밝히려는 행동주의 심리학은 사람의 모든 행동을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자극에 특정한 반응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어린애가 말을 배우는 것은, 요컨대, 어른들의 말을 듣고 그것을 모방하게 되고 그 모방이 칭찬을 받게 되면 잊지 않고 되풀이함으로써 말을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으로는 어린애들이, 주3과는 관계 없이, 모두 말을 잘 배운다는 사실과 특히 이 과정에 나타나는 창조적인 측면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말을 배우는 아이는 조금만 익숙해지면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기발한 표현(단어의 결합)을 하여 주위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리고 사람은 한뉘를 사는 동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을 하는데 그 중에는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는 새로운 표현도 아주 많다. 이런 새로운 표현은 그것을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시인(詩人)의 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농부나 상인의 일상 회화에서도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빈약한 자극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말의 지식을 가지게 되는 것도 창조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실상, 이런 창조적 측면은 말을 하는 행위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한 말 즉 모어만은 유창하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보지 않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말의 체계

이 세계의 여러 말들은 기본적인 공통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모든 말은 입으로 내는 소리와 그것이 나타내는 뜻(개념)의 양면을 지닌 기호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호의 단위는 보통 상식으로는 음절이나 단어라고 생각되고 있으나 언어학자들은 음소(音素, phoneme)형태소(形態素, morpheme)라고 말한다.

아무리 긴 이야기라도 그것은 의미의 최소 단위인 형태소로 분석될 수 있고 이 형태소는 다시 소리의 단위인 음소로 분석될 수 있는 것이다. 각 음소는 다시 몇 개의 자질[資質, feature]로 이루어져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소수의 음소를 적절히 결합하여 다수의 형태소를 만들고 이들을 이리저리 연결하여 무한한 수의 문장을 이룬다는 점이다.

물론 하나 하나의 기호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은 언어마다 다르다. 우리말로 cip(집)이란 소리로 나타내는 것을 중국어로는 fangzǐ(房子), 일본어로는 ie, 영어로는 haus(house), 불어로는 mezɔ̃(maison)라고 한다.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언어마다 다른 기호를 쓰고 있음은 언어 기호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임의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학자들은 이것을 언어 기호의 자의성(恣意性)이라 부르고 있다.

이 세계의 모든 말은 각각 다수의 기호를 가지고 있지만 이 기호들이 하나 하나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일정한 관계를 맺어 커다란 체계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따라서 어느 말에나 그 음소들이 이루는 음운체계, 형태소들이 단어를 이루고 문장을 이루는 문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저 위에서 이 세계의 모든 말이 발달의 정도에 있어서 한결같다고 했는데, 이것은 어엿한 음운체계와 문법체계를 갖추고 있는 점에 있어서 하나의 예외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혹시 단어들을 모두 한데 모은 어휘(語彙, vocabulary, lexicon)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할는지도 모르나, 그 말을 쓰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뿐, 이것으로 발달의 정도를 잴 수는 없는 것이다.

말의 구실

말은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소리로서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意思疏通)의 주13 구실을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간행된 언어학 책이나 사전들에 대개 이런 정의(定義)가 있음을 본다. 이 정의는 말의 일차적 기능을 주로 말한 것이다. 하루 하루의 사회 생활에서 말은 그 사회의 사람들 사이의 주5이 된다.

그러나, 원활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로 오고가는 말이 분명하고 정확하며 생각을 틀림없이 전달해야 하고, 둘째로 점잖고 정다워 감정을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상냥한 미소와 함께 부드러운 말씨를 쓰는 일이 우리의 사회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에 해 다르고 애 해 다르다'든가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속담은 말씨의 중요성을 잘 나타낸 것이다.

현대에 들어, 말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는 듯이 보인다. 언론이 무제한으로 팽창하다 보니 말이 무척 헤퍼지고 거칠어진 것이 사실이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고 한 옛 사람들의 관찰이 조금도 그른 데 없음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고 한 옛 사람들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겨 말 한마디 한마디를 신중히 가려서 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말은 삼가서 적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고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말 안하면 귀신도 모른다’고 했으니 말 쓰기란 참으로 어렵기 그지없다.

말이 없는 인류 사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의 지능이나 사회의 조직을 비롯하여 인류가 누리고 있는 것 중에 어느것 하나 말의 덕분이 아닌 것이 없다. 애당초 말이 없었다면 인류도 다른 동물의 세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큰 발전을 이룩한 오늘이라도, 모든 사람이 벙어리가 된다면 이 세상이 큰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영영 벙어리가 되고 만다면 세상은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이 지구 위에는 5,000이 넘는 말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말들 속에는 각각 그 민족의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이 온통 녹아 들어 있음을 본다. 기본적으로는 공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음운 · 문법 · 어휘의 다양하고 미세한 차이를 통해서 그 민족의 독자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과 다른 마음바탕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여러 경험을 통하여 느끼고 있는데, 이 마음바탕의 차이가 전적으로 말의 차이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해도,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각 민족의 말 속에는 그 민족이 인간의 내부와 외부의 현상들을 바라본 각도와 그것들을 체계화한 사상이 배어 있어서, 어린애들은 말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민족의 마음바탕에 물들게 된다. 말 속에 배어 있는 민족의 오랜 전통에 접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변 사람들이 쓰는 관용구(慣用句)나 속담(俗談)을 들을 때 그 속에 담겨 있는, 앞서 간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 방식에 관한 교훈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 나중에 학교에 가서 옛 사람들이 쓴 글을 읽게 되면 민족 문화의 전통이 어린 마음속을 채우게 되는 것이다. 이 어린이는 자라서 마침내 민족 문화의 정수를 이어받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에는 영묘(靈妙)한 힘이 있다는 믿음이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왔다. 그 한 증거로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전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단어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동일시하여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믿었고 이러한 믿음이 터부(taboo)의 연원이 되었음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터부란 민속에서 어떤 대상과 접촉하거나 그것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금함을 가리킨다. 옛날 주6이 잦았던 우리 나라에서 ‘호랑이’를 직접 입에 담지 않고 ‘산신령’이나 ‘영감’이라 빗대어 부른 관습이 있어 왔는데, 이와 비슷한 현상은 세계 여러 나라 말에서 발견된다.

말의 영묘한 힘은 사람과 신명(神明) 사이를 연결하는 주(呪)의 형식을 취한다. 이 주의 대표적인 예를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권2)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보이는 「구지가(龜旨歌)」와 ‘수로부인’(水路夫人)에 보이는 「해가(海歌)」는 둘 다 주14로서 매우 소중한 기록이다.

세계의 여러 종교 경전에 사람과 신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행해지고 있는 굿에서도 사람과 신의 교섭을 볼 수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강신무(降神巫)의 경우에 격렬한 춤을 통하여 신이 내리면 무당이 신의 말인 ‘공수’를 받아 주게 된다. 말이 신성시(神聖視)되는 주15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말의 변화

말은 시간과 함께 변한다. 과거에도 끊임없이 변해 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모든 말이 다 변화를 겪는다는 점에서 이것도 인류의 말의 공통 특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변화는 서서히 일어난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만큼 조금씩 일어난다. 말은 한 사회적 규약이니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느리게 조금씩 일어나지만, 이 변화는 말 전체에서 일어난다. 말의 어느 부분도 영구불변한 것은 없는 셈이다. 음운 · 문법 · 어휘 · 의미의 어느 것도 변화를 면할 길이 없다.

한 500년 동안의 기록을 가진 말들을 놓고 보면 이런 변화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국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한글이 처음 창제되었을 때 적은 글과 그 뒤에 적은 글들을 비교해 보면 국어가 그동안 많이 변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한낱 가상(假想)이지만, 세종대왕 때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현대의 우리들과 만난다 해도 서로 대화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 특별히 그때의 말을 연구한 몇몇 국어학자는 예외가 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변화는 말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다. 변화에 경향이나 규칙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가령 어떤 소리는 어떤 환경에서 대체로 이렇게 변하는데, 어느 말에서는 어느 시대에 이런 변화가 있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니, 옛날에 한 곳에서 한 말을 하며 살던 사람들이 여러 곳에 나뉘어 따로 떨어져 살게 되면 그들의 말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여 천년쯤 지나면 아주 다른 말이 되고 만다. 독일어와 영어는 본래 한 주16에서 1500년쯤 전에 갈라져 나온 가지들이다.

19세기 초에 유럽 학자들은 어족(語族, family of languages)이란 개념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옛날의 한 말에서 변한 여러 말들을, 한 조상의 자손들과 같이 생각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18세기말에 고국을 떠나 멀리 인도에 간 영국의 학자가 고대 인도의 범어(梵語)를 배우다가 자기가 영국에서 배운 그리스어나 라틴어와 범어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신통하게 닮은 점들이 많음을 깨닫고 이들이 한 조상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었다.

이 가설이 19세기초에 유럽 학자들의 주목을 끌어, 인도의 범어로부터 페르샤어, 그리스어, 라틴어, 슬라브어, 게르만어(독일어, 영어 등)의 비교 연구가 이루어졌고 이들의 친족관계(親族關係)가 밝혀져 하나의 커다란 어족으로 묶이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인도유럽어족(Indo-European family of languages)이 형성된 것이다.

이 연구 방법, 즉 비교언어학의 방법은 곧 세계의 다른 말들에 파급되어 여러 어족의 가설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 한 예로 유라시아 대륙에 널리 퍼져 있는 말들, 서쪽은 핀란드어, 헝가리어로부터 동쪽은 토이기어, 몽고어, 퉁구스어까지를 묶은 우랄 · 알타이 어족의 가설이 생겨났으나 20세기에 들어 서쪽의 우랄 어족과 동쪽의 알타이 어족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 알타이 어족에 우리 한국어를 포함시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져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왔다. 여기서 알타이 어족의 ‘알타이’는 산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지만, 이 어족의 조상이 이 산맥에서 나왔다거나 이 산맥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었다거나 하는 것은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덧붙여 둔다.

눈을 돌려, 어떤 한 말의 안을 살피면 거기에서도 고장마다 사투리가 있음을 보게 된다. 사투리 또는 방언(方言)은 여러 고장의 말이 다르게 변한 결과로서 이것을 연구하는 분야를 방언학(方言學)이라 한다. 한국어의 예를 들면, 독특한 방언이 지역마다 발달되어 있어서 몇 마디 말만 듣고도 어느 고장 출신인지를 알아맞히기 어렵지 않을 정도다. 특히 제주도의 방언은 육지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만큼 매우 특이하다. 그러나 자세히 연구해 보면 분명히 한국어의 한 갈래임을 확인하게 된다. 멀리 외떨어져서 다르게 변했을 뿐이다.

말의 접촉

이 지구 위에서 완전한 고립 상태에 있는 말은 없다. 정도의 차는 있으나 이웃한 말들은 서로 만난다. 만나면 영향을 주고 받게 된다. 문화의 흐름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말도 대개는 그 흐름을 따른다. 일반적으로 접촉의 결과는 단어의 차용(借用)으로 나타난다. 어떤 특수한 분야의 단어들이 차용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고대에 한국어 단어가 적잖게 일본어에 들어갔는데 그 흔적이 정치 · 행정 분야에 남아 있다. 고대 일본에서 정치적 지배자를 kimi라 하고 지방 행정 구역을 köföri라 하였는데 이들은 신라어의 ‘금’(‘님금’의 ‘금’)과 ‘ᄀᆞᄫᆞᆯ’(郡)이 들어간 것이다. 또 성(城)을 sasi 또는 kï라 하였는데 이들은 성을 의미한 신라어의 ‘잣’과 백제어의 ‘긔’가 들어간 것이다.

고려 시대에 몽고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말(馬)이나 매(鷹) 그리고 군사에 관한 단어들이 들어왔다. 오늘날도 검은 말을 ‘가라말’이라 하고 매의 일종인 ‘보라매’는 우리나라 공군의 표상이 되어 있는데 이 ‘가라’, ‘보라’는 몽고어에서 들어온 것이다. 이런 예들은 차용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받아들이는 쪽의 필요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외국어로부터 차용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나라마다 현저히 다르다. 영어는 실제로 필요한 것이면 받아들이기를 과히 꺼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범세계적인 어휘(cosmopolitan vocabulary)를 가지고 있음을 영어의 한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기도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어와 독일어는 차용어에 대하여 자못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이 두 나라에서는 순화론(醇化論, purism)이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불어의 경우는 현대에 와서 밀려드는 영어의 세력에 거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여 왔고 독일어의 경우는 그리스어, 라틴어 계통의 단어들에 대하여 강한 저항을 보여 왔다. 독일어의 예를 들어 보면 그리스어, 라틴어 요소로 만들어진 telephone(전화), television(텔레비젼)이 밖에서 들어온 것을 물리치기 위하여 고유의 단어들로 Fernsprecher, Fernsehen과 같은 새 복합어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여기서 우리의 각별한 눈길을 끄는 것이 커다란 문명권(文明圈)을 이루고 그 안에서 지배적으로 쓰인 말들, 유럽의 라틴어나 동아시아의 중국어와 같은 대문명어(大文明語)의 존재다.

일찍이 로마제국의 세력이 오늘의 프랑스스페인 지방에 미쳤을 때 로마의 말이 이 지방들의 말을 물리친 것은 옛 일이라 치더라도, 중세와 근세에 걸친 여러 세기 동안 고전 라틴어(Classical Latin)가 서유럽 전역의 지적(知的) 문화를 담당하였음은 지극히 중요한 사실이다.

로마제국이 무너진 뒤에 카톨릭교회는 라틴어를 통하여 그 보편성을 유지하였으며 서유럽의 각지에 대학이 설립되면서 라틴어는 모든 대학의 학문어(學問語)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페인에서 폴란드까지, 스코틀랜드에서 시칠리아까지 서유럽 전역에서 학자들은 라틴어로 강의하고 글을 썼던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금이 가지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의 일이다. 앞서 종교개혁으로 로마 교회의 통일성이 깨어졌고 대학이 쇠퇴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대학에서도 라틴어 아닌 비속어(卑俗語)가 쓰이게 되었다. 프랑스의 예를 들면 강의를 불어로 하게 되었고 박사학위 논문도 불어로 쓰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어 논문에 라틴어 논문을 첨부했다가 나중에는 그것도 아주 없애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고전 라틴어가 물러났다고 하나, 중세로부터 근세에 이르는 여러 세기 동안 서유럽의 여러 나라 말에 끼친 그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예를 들면 불어는 본래 라틴어가 변화한 것으로 근본은 고전라틴어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학문어로 성장함에 있어서는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모두 고전라틴어에서 차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중국어가 고대로부터 대문명어(大文明語)의 구실을 하여 왔다. 우리 나라는 중국에 바로 이웃하여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중국 문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아주 초기는 어떠했는지 몰라도, 중국어를 배워서 입으로 말을 하는 일은 없었고 한자(漢字) 한문(漢文)을 배워서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은 말은 우리말을 하면서 글은 한문을 쓰는 매우 기이한 이중 생활을 하게 되었다. 물론 글은 상류 사회에서만 썼는데, 그들이 말까지 중국어를 하지 않은 점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옛 자음(字音)이 우리말의 음운에 맞게 굳어져 내려왔으니, 한문이라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이 읽으면 중국 사람은 그 뜻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중국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몇몇 통역관들뿐이었으며 우리나라 사신들은 중국에 가면 으레 붓으로 글을 쓰면서 대화를 하였으니 이 필담(筆談)의 광경이 여러 책에 묘사되어 있음을 본다.

그러나 2.000년에 걸쳐 한문이 사용되는 동안에 그것이 우리 한국어에 미친 영향은 참으로 큰 것이었다. 그 결과, 한국어 속에 방대한 양의 한자어(漢字語)가 쓰이게 된 것이다. 서유럽의 라틴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추상적인 개념이나 문화적 산물에 대해서 한자어가 많이 쓰이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기초 어휘에서도 ‘산’(山), ‘강’(江)이 고유어의 ‘뫼’, ‘ᄀᆞᄅᆞᆷ’을 물리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처럼 중국의 옆에서 크나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우리 민족이 우리말을 지켜 온 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자기 민족의 본래의 말을 잊어 버리고 다른 말을 하게 된 예가 결코 드물지 않다. 이런 일은 과거에도 세계의 도처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중앙 아시아의 어느 작은 종족은 최근 100년도 안 되는 동안에 말을 두 번이나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아시아에서도 이런 일은 드물지 않았다. 방대한 중국 영토를 들여다보면 중국어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아직도 변두리의 소수 민족들이 자기네 말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뒤집어 보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소수 민족들이 중국어로 말을 바꾸어 왔을까를 짐작게 한다.

그 가장 현저한 예로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백두산 북쪽에서 일어나 중국을 정복하고 주7를 세운 만주족이 차츰 자기네 말을 잊어 버리고 드디어 중국어 속에 잠기고 말았음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중국 문화를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받아들였으면서도 우리 민족 고유의 말을 잃지 않은 우리 민족의 경우는 하나의 특례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주시경(周時經)은 한 나라의 땅은 독립의 기(基)요, 사람은 독립의 체(體)요, 말은 독립의 성(性)이니, 이 성이 없으면 체가 있어도 그 체가 아니요, 기가 있어도 그 기가 아니니, 그 나라의 성쇠, 존망은 말의 성쇠, 존망에 달려 있다고 갈파한 바 있다. 위에 든 만주족의 역사를 볼 때, 주시경의 주장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한쪽으로는 중국, 다른 쪽으로는 일본과 대치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에, 중국과 일본이 각기 자기네 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만이 우리의 말을 가지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라. 우리 민족의 독자성이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기서, 중국어와도 다르고 일본어와도 다른 우리말이 있다는 사실이 각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실상 우리말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우리말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 것이 바로 이 두 주17이었음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말은 지난 몇 천년 동안 중국어와 대결하여 왔고, 20세기에 들어 짧은 기간이기는 했으나 일본어와 처절한 대결을 벌였음은 우리들이 다 아는 바와 같다.

말과 글

우리들은 어려서 배운 말을 한평생 쓰며 산다. 입으로 여러 소리를 내어 자기가 원하는 바, 뜻하는 바를 남에게 전달한다. 글은 말을 배운 뒤에 배우게 된다. 글은 종이나 돌과 같은 반반한 바닥에 적는 기호로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말과 글은 분명히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둘을 자주 혼동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창제했다고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세종대왕은 우리 글 즉 한글을 만든 분이지 우리말을 만든 분이 아니다. 우리말의 역사는 세종대왕 이전으로,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과 글의 혼동은 이 둘 사이의 매우 밀접한 관계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순수히 이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느 특정의 말과 상관 없이 글을 만들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논리학, 수학을 비롯한 몇몇 학문 분야에서 사용하는 기호들과 같은 극히 제한된 것이 있을 뿐이요, 우리가 글 또는 문자(文字)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모두 말을 적는 수단으로 발달된 것이다.

말과 글의 중요한 차이를 세 가지만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말은 입으로 소리를 내고 귀로 듣는 것이지만 글은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말은 모든 사람이 할 줄 알지만,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이 세계에는 아직 한번도 글로 적혀본 일이 없는 말들도 많다. 셋째, 말의 유구한 역사에 견주면 글의 역사는 너무나 짧다. 인류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밖에 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문자 창조는 몇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 가장 오래고 중요한 창조는 기원전 3,000년기에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에서 생긴 신성문자(神聖文字, 주18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에서 만들어진 주19였고 이들보다 조금 뒤진 시기에 중국 황하유역에서 출현한 한자(漢字)였다.

이들은 모두 상형(象形)을 기본으로 한 표의문자(表意文字)로서 나중에 부분적으로 표음문자(表音文字)가 발달했던 것이다. 표음문자에는 음절을 한 글자로 적는 음절문자와 음소를 한 글자로 적은 음소문자가 있는데, 매우 적은 수의 글자만으로 말을 적을 수 있는 음소문자가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다.

오늘날 지구 위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음소문자인 알파벳(Alphabet)은 기원전 2,000년기의 전반에 시리아 · 팔레스티나 지방의 북부 셈족 사이에서 그 싹이 텄다고 한다. 이 문자는 처음에는 자음(子音) 문자뿐이었는데 그리스 사람들이 셈족의 한 갈래인 페니키아 사람들로부터 이 문자를 받아 그리스어를 표기함에 있어 모음(母音) 문자를 추가함으로써 알파벳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이 그리스 알파벳이 에트루리아를 거쳐 로마에 전해져 라틴어를 표기하게 되어 오늘날 널리 쓰이는 로마 알파벳이 성립되었다. 동양으로도 흘러 왔다. 그 근원은 셈문자의 한 갈래인 주20였다. 아람문자의 한 줄기가 인도로 들어가 인도와 동남아의 여러 문자를 낳았고 또 한 갈래인 시리아문자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위구르문자, 몽고문자가 되고 마침내 만주문자가 되어 압록강에 도달한 것이다.

음소문자라고 하지만, 이 문자들은 한 음소를 여러 글자로 쓰기도 하고 여러 음소를 한 글자로 쓰기도 하는 매우 불완전한 것이었다. 이 문자들은 횡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 특징인데 몽고문자와 만주문자에 와서는 종서로 되었음이 주목된다. 이렇게 된 데는 필시 중국 한자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종서로 고쳐지면서도 행의 순서는 횡서 때의 관습을 유지하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감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극히 간단히 요약한 문자사(文字史)의 흐름에서 볼 때, 우리 나라의 한글은 그 어느 계통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존재임을 직감할 수 있다. 동아시아로 흘러온 음소문자 계통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것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완전히 독창적으로 만든 문자라는 점에서 세계 문자사의 유일한 예외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침이 없다. 더구나 동아시아에서 쓰인 몇 안 되는 음소 문자들은 매우 불완전한 것이었는데 한글은 완전한 음소문자의 체계를 갖추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창조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가 글로 기록된 뒤의 유사(有史)시대와 그 이전의 선사시대로 구분됨에서 볼 수 있듯이, 글이 인류의 문화에 공헌한 바는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고대의 여러 민족이 남긴 고전(古典)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뒤의 학문과 예술에 관한 모든 것이 고스란히 글로 적혀 있는 것이다.

글은 말을 적는 시각적 기호지만, 이것이 도리어 말에 큰 영향을 미친 점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말을 글로 적는 과정에서 말의 표현이 더욱 정확하고, 세련되게 된 것이다. 이 영향은 특히 근대에 와서 커졌다. 근대에 와서 학교 교육과 출판 인쇄가 부쩍 늘어남에 따라 모든 나라들이 다투어 표준어와 맞춤법을 제정하여 말과 글의 통일을 꾀하게 된 뒤로, 글은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글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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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개설』(이기문, 탑출판사, 1972)
『현대언어학, 지금 어디로』(장석진 편, 한신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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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Systems(Sampson, S., London:Hutchinson, 1985)
Languages in Contact(Weinreich, U., Hague:Mouton, 1953)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Linguistics(Bright, W. ed., Oxford:Oxford University Press, 1992)
주석
주1

소아시아에 있은 옛 왕국

주2

자라나면서 배운, 바탕이 되는 말. 우리말샘

주3

한 번 듣거나 본 것을 잊지 않고 오래 지니는 총기

주5

나무 그릇 따위의 터지거나 벌어진 곳이나 벌어질 염려가 있는 곳에 거멀장처럼 겹쳐서 박는 못. 우리말샘

주6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禍). 우리말샘

주7

중국의 마지막 왕조(1616~1912).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후금국을 세우고, 그 아들 태종이 국호를 이것으로 고쳤으나 신해혁명으로 멸망하였다. 우리말샘

주8

한평생

주9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 우리말샘

주10

구약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지상 낙원.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추방당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우리말샘

주11

함ㆍ셈 어족 서북셈 어파의 가나안 어군에 속한 언어. 이스라엘의 공용어로, 세계 각지의 유대인 사회에서도 쓰인다. 우리말샘

주12

멍멍설 Bow-wow theory

주13

물건을 만들거나 일을 할 때에 쓰는 기구와 재료. 우리말샘

주14

주술성을 띤 시가. 대표적으로 무가(巫歌)가 있다. 우리말샘

주15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 우리말샘

주16

원시 게르만어

주17

중국어와 일본어

주18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 표의 문자와 표음 문자의 성격이 모두 있다. 로제타석에 있는 것을 1822년에 프랑스의 샹폴리옹이 처음으로 해독하였다. 우리말샘

주19

기원전 3100년경부터 기원전 1세기 중엽까지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고대 오리엔트에서 광범위하게 쓰인 문자. 회화 문자에서 생긴 문자로, 점토 위에 갈대나 금속으로 새겨 썼기 때문에 문자의 선이 쐐기 모양으로 보인다. 단어 문자로서 수메르어를 적던 것이 아카드어에 전해지면서 음절 문자가 되었고, 후에 페르시아어, 히타이트어 등에 퍼졌다. 초기에는 1800여 개였던 것이 점점 수가 줄어 고대 페르시아어에서는 42개가 되었으며, 애초에는 위에서 아래로 쓰던 것이 후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으로 변하였다. 우리말샘

주20

기원전 8세기 무렵에 페니키아 문자에서 파생되어 기원후 7세기 정도까지 사용된 서아시아 일대에서 사용된 자음 문자. 페니키아 문자와 같이 자음자 22자로 구성되었고, 아람어뿐 아니라 히브리어, 고대 시리아어 등을 적는 데에도 쓰였다.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 여러 아시아 문자들의 기초가 되었으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우리말샘

집필자
이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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