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과학겸교수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중기와 후기, 관상감에서 명과학을 담당하도록 문신으로 임명한 종6품의 겸직 교수.
제도/관직
설치 시기
조선 중기
소속
관상감
내용 요약

명과학겸교수는 조선 중기와 후기에 관상감에서 명과학을 담당하도록 문신으로 임명한 종6품의 겸직 교수이다. 중종 대에 명과학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처음 설치되었으며, 시기에 따른 치폐가 있었다. 취재를 통해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사만 45개월이 차면 6품으로 승진하는 자리였다.

정의
조선 중기와 후기, 관상감에서 명과학을 담당하도록 문신으로 임명한 종6품의 겸직 교수.
설치 목적

조선 중기에 천문(天文) · 지리(地理) · 명과(命課) · 의학(醫學) 등의 학술을 정밀하게 운영하기 위하여 이 직책에 합당한 문관(文官)을 겸교수(兼敎授)로 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였다. 주1도 기술직이 아닌 문관으로 종6품 교수를 겸임토록 하면서 명과학겸교수가 설치되었다.

1466년(세조 12) 1월에 관제를 다시 정하면서, 주2은 지리학(地理學)으로 이름을 고쳐서 교수 · 훈도(訓導)를 각각 1명씩, 천문학(天文學)은 교수 · 훈도를 각각 1명씩을 두었으나, 음양학(陰陽學)에서 이름이 바뀐 명과학(命課學)에는 훈도 2명을 두었다.

이처럼 조선 초기의 명과학에는 교수가 없었으며, 이는 『경국대전』 관상감 직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천문학과 지리학은 각각 종6품의 교수(敎授) 1명과 정9품의 훈도가 1명씩 설치되었던 반면, 명과학은 교수를 두지 않고 훈도만 2명을 설치하였는데, 중종 대에 명과학에도 종6품의 겸교수 1명을 처음으로 설치한 것이다.

임무와 직능

실록에서는 1530년(중종 25) 4월 기사에서 명과학의 겸교수 김형(金泂)이 주5를 간택할 때 추명(推命)하는 일에 전례대로 참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후 한때 문신이 맡던 명과학겸교수를 습독관에게 맡겨서 그 업을 전문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란도 있었으나, 1746년(영조 22)에 반포된 『속대전』의 직제에는 천문학겸교수 3명, 지리학겸교수 · 명과학겸교수 각각 1명씩 증치되어 있다. 대신 명과학 훈도는 『경국대전』의 2명에서 1명을 감원하여 1명만 설치되었다. 명과학겸교수의 사만(仕滿) 기일은 45개월이었다.

변천사항

『속대전』 직제에 보이던 명과학겸교수가 1785년(정조 9)에 반포된 『대전통편』에서는 천문학겸교수 3명을 설치하되, 한 자리[一窠]는 그대로 천문학에 속하고, 한 자리는 천문 · 지리 · 명과의 3학(三學)을 차례대로 돌았으며, 한 자리는 주3화원이 돌아가며 소속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후 1791년(정조 15) 10월에 정조는 겸교수 한 자리는 명과학에 전속시켜 주4들을 권장하고 징계하는 방안으로 삼도록 명하였으며, 관상감에서는 3학에 대해 개정한 절목을 올렸다.

여기에서는 번갈아 돌려가며 소속시키는 방식을 없애고, 3학에 돌려가며 임명하는 겸교수 한 자리는 명과학에 전속시켜 45개월이 차면 6품으로 승진하는 자리로 삼았다. 이 규정은 그대로 법제화하여 『대전회통』에서는 명과학겸교수가 다시 복구되어 있다. 이 명과학겸교수는 취재를 통해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속대전(續大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중종실록(中宗實錄)』

논문

이수동, 「조선시대 명과학 시험교재 『관매수』 고찰」(『동방문화와 사상』 1,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16)
주석
주1

운명, 길흉, 화복 따위에 관한 문제를 논하는 학문.    우리말샘

주2

풍수 지리에 관한 학문.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에, 관상감에 속하여 금루를 관리하는 일을 맡아보던 잡직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우리말샘

주4

길일(吉日)을 잡는 사람.    우리말샘

주5

임금의 사위.    우리말샘

집필자
임선빈((前)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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