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과학훈도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명과학을 담당한 정9품 관직.
제도/관직
설치 시기
1466년(세조 12)
소속
관상감
내용 요약

명과학훈도는 조선시대에 관상감에서 명과학을 담당한 정9품 관직이다.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다시 정하면서 음양학에서 이름이 바뀐 명과학에 처음으로 훈도 2명을 설치하였다. 이후 중종 대에 명과학겸교수가 1명 설치되면서 명과학훈도는 1명으로 줄었다.

정의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명과학을 담당한 정9품 관직.
설치 목적

명과학훈도는 1466년(세조 12) 1월에 관제를 다시 정하면서, 음양학(陰陽學)에서 이름이 바뀐 주1에 훈도 2명을 두었다. 이는 『경국대전』 관상감 직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천문학과 지리학은 각각 종6품의 교수(敎授) 1명과 정9품의 훈도(訓導) 1명씩 설치되어 있었던 반면, 명과학은 교수를 설치하지 않고 훈도만 2명을 설치하였다.

임무와 직능

조선시대 관상감에서는 주2 삼재 학문인 천문학과 지리학, 명과학을 가르쳤다. 이 3가지 학문 중에서 명과학을 전담해서 가르치던 관리가 바로 명과학훈도였다.

변천사항

중종 대에 천문(天文) · 지리(地理) · 명과(命課) · 의학(醫學) 등의 학술이 모두 정밀하지 못하다고 하여, 이 직책에 합당한 문관(文官)을 겸교수(兼敎授)로 삼는 새로은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였다. 1746년(영조 22)에 반포된 『속대전』의 직제에는 천문학겸교수 3명, 지리학겸교수와 명과학겸교수 각각 1명씩 증치되었다. 대신 명과학훈도는 『경국대전』에서 2명이었으나 1명을 감축하여 1명만 설치되었다. 이는 그대로 이어져서 정조 대에 편찬된 『대전통편』, 고종 대에 편찬된 『대전회통』에서도 모두 명과학훈도는 1명만 설치되어 있다.

참고문헌

원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세조실록(世祖實錄)』
『속대전(續大典)』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중종실록(中宗實錄)』

논문

이수동, 「조선시대 명과학 시험교재 『관매수』 고찰」(『동방문화와사상』 1,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동양학연구소, 2013)

인터넷 자료

조선왕조실록사전(http://waks.aks.ac.kr/site/encysillok)
주석
주1

운명, 길흉, 화복 따위에 관한 문제를 논하는 학문.    우리말샘

주2

우주의 기본 구성 요소가 되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집필자
임선빈((前)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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