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군을 진압하다가 전사한 70여 장졸들의 영령을 봉안한 곳으로, 1894년(고종 31) 청주목사 임택호(任澤鎬)가 남석교(南石橋) 밖에 설단(設壇)하고 치제(致祭)하였다.
그 뒤 1903년에 대대장 안종환(安宗煥)의 계품에 따라 전몰 장교들에 대한 증직이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당산(唐山)에 단을 만들고 모충단이라는 단호(壇號)를 왕으로부터 받았고, 기념비각도 함께 세워졌다.
이후 곽치중(郭致中) · 윤영성(尹永成) · 김순택(金順澤) 등의 주선으로 모충계가 조직되어 1914년 가을 당산에 사당을 세웠다. 향사일은 전몰일인 음력 10월 3일로 정하였으며, 사당이 여러 번 옮겨지다가 1975년 현재 위치에 세워졌다.
건물구조는 목조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경내에는 동학군을 진압하는데 공이 컸던 병마절도사 홍재희(洪在羲)의 사적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