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동 본향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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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부부신인 일문관바람웃님과 지산국을 모신 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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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부부신인 일문관바람웃님과 지산국을 모신 신당.
내용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당으로 서귀동 시가지 중심에 있다. 20평 가까운 슬레이트집으로 되어 있고, 건물 옆에 큰 팽나무 신목이 서 있다. 본래 신목만으로 되어 있던 당에 당건물을 지은 것이다.

건물 안에는 신단(神壇)이 만들어져 있고 ‘서귀리본향대명신지위(西歸里本鄕大明神之位)’라는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제일(祭日)은 정월 초하루의 신과세제(新過歲祭), 2월 13일의 영등손맞이, 7월 13일의 마불림제, 11월 14일의 본향생신대제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신과세제와 영등손맞이만이 행하여진다.

당굿은 이 제일에 매인 심방(당에 딸린 무당)에 의해서 아침부터 종일 벌어진다. 매인심방은 단골들이 의논하여 마을의 심방 중에서 정하는데, 지금까지 10대째 바뀌어 왔다. 본향당의 신은 ‘일문관바람웃님(ᄇᆞ름웃님)’과 ‘지산국’부부인데, 이 부부 신이 당신이 된 내력을 설명하는 본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홍토 나라에서 태어난 일문관바람웃님이 다니다가 미모의 처녀를 발견하고 그 집에 장가를 들었다. 장가를 들고 보니 부인은 추녀인 고산국이었다. 처음 본 미모의 처녀는 처제 지산국이었던 것이다. 일문관바람웃님은 부인 고산국을 버리고 몰래 처제 지산국을 데리고 제주도 한라산으로 도망쳐왔다.

여기저기 명승지를 구경하고 나서 서귀포시 토평(吐坪) 부근에 있는 쌀오름(ᄉᆞᆯ오름)에 와서 지산국과 놀음놀이를 하고 있는데, 고산국이 동생과 도망친 것을 알고 뒤쫓아왔다.

세 사람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서귀마을의 김씨 영감이 사냥하러 다니다가 이들을 만났다. 일문관바람웃님과 지산국은 김씨 영감의 인도를 받아 그의 집으로 고산국을 피하여 갔다.

김씨 영감의 집에 머물러보니 먼지냄새와 그을음냄새가 나서 신과 인간은 같이 좌정할 수 없음을 알고, 서귀포시 상효(上孝) 부근의 가시머리 외돌(ᄀᆞ시ᄆᆞ리웨돌)로 갔다. 여기에 다시 고산국이 쫓아와 다툼이 벌어졌다. 화의할 수도 죽일 수도 없는 처지이므로 고산국은 서로가 뿡개질을 하여 토지를 갈라서 살 것을 제의하였다.

뿡개질이란 긴 노끈을 접어 겹친 사이에 돌을 끼우고 노끈을 쥐어 돌리다가 돌을 날려보내는 방법이다. 고산국의 돌은 서홍(西烘)마을의 흙담에 떨어지고, 일문관바람웃님의 돌은 서귀포의 문섬[文島]에 가 떨어졌다. 그래서 큰부인 고산국은 서홍마을을 차지하여 당신으로 들어서고, 일문관바람웃님과 지산국은 서귀마을의 당신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 때 고산국은 헤어지면서 동생에게 성씨를 지가(池哥)로 바꿔라 하고, 두 마을 사이에는 혼인도 맺지 말고 마소의 출입도 못하게 하여 완전히 인연을 끊으라고 하였다. 이래서 동생은 지산국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고, 두 마을 사이에는 서로 혼인을 않는 풍습이 과거에 있었다 한다.

참고문헌

『제주도무속자료사전』(현용준, 신구문화사, 1980)
『남국의 무가』(진성기, 제주민속문화연구소, 1968)
『韓國の民間信仰』(張籌根, 東京 金花舍, 1973)
『朝鮮巫俗の硏究』 上(赤松智城·秋葉隆, 大阪 屋號書店,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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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현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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