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홍호(洪鎬, 1586~1646)의 자는 숙경(叔京)‚ 호는 무주(無住), 본관은 부계(缶溪, 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이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고 대사간에 이르렀다. 문신이면서도 용병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6권 2책. 목판본.
무주일고는 2책 6권이다. 1책은 권1·2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에 시 58수가, 권2에 서(書) 1편, 소(疏) 9편이 수록되어 있다. 2책은 권3·4·5·6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3에 계(啓) 3편, 제문(祭文) 8편, 잡저(雜著) 3편이, 권4에 조천일기(朝天日記)가, 권5에 귀산록(歸山錄) 시 7수, 남귀록(南歸錄) 시 5수, 서행록(西行錄) 시 5수, 조천록(朝天錄) 시 13수가 수록되어 있고, 권6은 부록으로 저자의 행장(行狀)·갈명(碣銘) 각 1편 및 저자를 위해 지은 타인의 제문 2편, 만사(輓詞) 1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차운시와 화답시가 많은데, 원운(原韻)을 부기한 것이 다수이다.
서(書)의 「상이순찰상거서(上李巡察尙去書)」는 저자가 영변판관(寧邊判官)으로 있을 때, 그곳 관리의 잦은 체직(遞職)과 잡역(雜役)의 고르지 못함을 순찰사에게 알린 편지이다. 소(疏) 가운데 「진평안도축성급영변부민폐소(陳平安道築城及寧邊府民弊疏)」에서는 평안도 일대에 성(城)을 쌓아 방위 대책을 강구할 것을 촉구하고, 아울러 영변지방의 민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진술하였다. 「진경상우도관방이해급안음현민폐소(陳慶尙右道關防利害及安陰縣民弊疏)」에서는 안음현(安陰縣, 현, 경상남도 거창군 안의면)의 민폐를 지적하고, 진주(晉州)에 병영(兵營)을 두는 것이 경상우도의 방위 전략상으로 부당하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논자비총소(論自備銃疏)」는 각 관청의 포수(砲手)들 대부분이 총을 제대로 쏠 줄 몰라 방위 대책에 차질이 많다고 지적하고, 그 개선책을 밝힌 것이다. 「논박승종적몰계(論朴承宗籍沒啓)」는 인조반정 후 아들과 함께 자결(自決)한 박승종(朴承宗)의 가산을 적몰한 일의 부당함을 강조한 글이다. 박승종은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자결했으니 그 의리로 보아 그를 신원(伸寃)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잡저 가운데 「상우복선생성리절요문목(上愚伏先生性理節要問目)」과 「질언(質言)」에는 저자가 스승인 정경세에게 성리학에 대한 의문점을 질의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조천일기」는 1632년(인조 10) 7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적은 기행문이다. 「귀산록」과 「남귀록」은 고향에 돌아갈 때 친구로부터 받은 시이고, 「서행록」은 영변판관으로 갈 때의 시이며, 「조천록」은 명나라에 갈 때의 시들을 모은 것이다. 부록의 홍여하가 쓴 장문의 행장은 당시의 사회 사정을 살펴보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명나라에 서장관으로 다녀오면서 적은 기행문인 「조천일기」와 「조천록」은 사행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여러 편의 상소문은 당시 정치와 사회 사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