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당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 학자인 박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4년에 간행한 시문집.
이칭
이칭
무민당선생문집(無悶堂先生文集)
문헌/고서
편찬 시기
조선 후기
간행 시기
조선 후기
저자
박인(朴絪)
편자
박성림
권책수
9권 5책
권수제
무민당선생문집(無悶堂先生文集)
판본
목판본
표제
무민당선생문집(無悶堂先生文集)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무민당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박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본집 7권 4책, 별집 2권 1책 등 모두 9권 5책의 목판본으로, 본집의 표제와 권수제는 ‘무민당선생문집(無悶堂先生文集)’, 판심제는 ‘무민당집(無悶堂集)’이다.

정의
조선 후기, 학자인 박인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4년에 간행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저자 박인(朴絪, 1583~1640)의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백화(伯和), 호는 무민당(無悶堂)이다. 외종숙인 정인홍(鄭仁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광해군(光海君) 대에 정인홍의 정치적 행위에 반대하여 절교하였다. 한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 연마에 힘써 학덕이 높은 영남의 산림처사라 평가받는다.

편찬/발간 경위

저자 사후에 문집 간행을 위해 문중에서 1711년(숙종 37)과 1776년(영조 52)에 각각 계를 결성하고 여러 사람의 서문을 받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저자의 6세손인 박용전(朴龍田)이 1798년(정조 22)에 정종로(鄭宗魯)에게 서문을 받고도 간행하지 못하다가 저자의 5세손 박성림(朴聖林)이 1814년(순조 14)에 본집 7권, 별집 2권 등 9권 5책의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서지적 사항

9권 5책(본집 7권 4책, 별집 2권 1책). 목판본.

내용

본집 7권 4책과 별집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집 1책 권두에 정종로의 서문과 저자의 세계도(世系圖)·연보 및 문집 전체의 목차가 수록되어 있고, 권1에 시(詩) 122수가 시체별로 수록되어 있다. 본집 2책은 권2·3에 해당되는데, 서(書) 68편이 수록되어 있다. 본집 3책은 권4·5에 해당되는데, 권4에 서(序) 4편, 기(記) 4편, 설(說) 4편, 잡저(雜著) 3편, 제문(祭文) 7편, 묘비명 1편이, 권5에 남명선생언행총록(南冥先生言行總錄), 남명선생연보가 수록되어 있다. 본집 4책은 권6·7에 해당되는데, 권6에 만장(挽章) 29수, 제문 16편이, 권7에 행장(行狀) 2편, 묘갈명·묘지·용연서원상량문(龍淵書院上樑文)·이건시상량문(移建時上樑文)·봉안문·상향문(常享文)·이건후상향문 각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별집의 권1에 제영(題詠) 55수, 언행총록(言行總錄)·용연서원청액소(龍淵書院請額疏) 각 1편이, 권2에 사우록(士友錄)·문도록(門徒錄)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한시는 광해군과 인조(仁祖) 대의 혼란한 정계상황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느낀 감회를 읊은 시가 주목된다. 「애연(哀鷰)」은 1614년 북인(北人)영창대군(永昌大君)의 살해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출을 계획하자 그 애통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문서보유감(聞西報有感)」은 1627년 강홍립(姜弘立)이 후금(後金)의 군사를 이끌고 침입해 오고, 인조는 강화(江華)로 피난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시이다. 「문남한강화휘체이제(聞南漢講和揮涕而題)」는 1636년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와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지은 것이다. 「재화(栽花)」는 청나라와 화친을 한 뒤 명나라의 달력이 반포되지 않자 뜰에 꽃을 심고 뜻을 붙여 읊은 시이다. 「영두견(詠杜鵑)」은 1639년 세자가 심양(瀋陽: 현,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에 있는 것을 두견에 비유하여 읊은 시이다. 서(書) 가운데 「상동계선생(上桐溪先生)」 별지(別紙)는 조식(曺植)의 언행록을 만들어 후생에게 전하자고 정온(鄭蘊)에게 부탁하는 내용이다. 「여정인홍(與鄭仁弘)」은 스승인 정인홍이 영창대군을 폐하고 정온을 해치려 하는데 대해 질책하는 글이다. 서(序) 가운데 「산해사우연원록서(山海師友淵源錄序)」는 남명 조식의 전기 자료와 종유한 사람 20명, 문인 53명 등을 기록한 『산해사우연원록(山海師友淵源錄)』의 서문이다. 잡저 가운데 「삼리향약입의(三里鄕約立議)」 덕업상권(德業相勸)·혼인상조(婚姻相助)·환란상휼(患亂相恤)·사상상구(死喪相救)·금양송목(禁養松木)·과악규벌(過惡糾罰)·분임치사(分任治事)·춘추강신(春秋講信) 등 8조목으로 되어 있다. 별집의 권말에 5세손인 박성림이 쓴 지(識)가 있다.

현황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문화처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을 영인하였다(한국문집총간 속21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도록 온라인으로 원문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정종로는 서문에서 저자가 평소에 항상 남명 조식의 글을 외우고 말하며 공경히 감복해 마지않았다고 하였다. 『산해사우연원록』의 편찬을 주도하는 등 남명학의 계승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 받기에 남명학파 문인의 사상을 보여 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강여진, 『무민당집 해제』 (한국고전번역원, 2010.)

논문

구진성, 「『山海師友淵源錄』 編纂上의 爭點과 南冥學 傳承의 두 흐름」 (『한문학보』 32, 우리한문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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