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이철후의 아들 이원빈(李元斌)이 10권으로 편집·간행했지만, 6·25사변 때 소실되어 1964년 다시 간행하였다. 이때 4권이 유실되어 지금은 6권만 전한다. 권두에 노근용(盧根容)의 서문, 권말에 성순영(成純永)과 이원빈의 발문이 있다.
10권 5책. 석인본. 경상북도 김천의 벽진이씨(碧珍李氏) 종가에 있다.
권1에 시 115수, 권2∼4에 서(書) 99편, 잡저 3편, 서(序) 1편, 기(記) 4편, 발(跋) 4편, 상량문 1편, 축문 2편, 제문 17편, 권5에 묘표(墓表) 1편, 유사 3편, 부록으로 유사·행장·묘지명·묘갈명, 권6에 만장(輓章) 75수, 제문 2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친구들의 유덕과 학풍을 기리는 만시(輓詩)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지은 기행·서경이 많다. 시풍이 평이·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서(書)는 주로 스승·동학·제자들과 학문을 토론한 서신이다. 그 가운데 「상사미헌선생(上四未軒先生)」의 문목(問目)에는 『대학』의 격물(格物)과 정심(正心)장의 ‘무심지병(無心之病)’ 및 ‘성정설(性情說)’에 대해 저자가 질의한 것과 장복추의 답이 실려 있다.
「여조성재(與曺惺齋)」 8편은 주로 『중용』과 성정설에 대해 토론한 내용이고, 「여남사형(與南士珩)」 3편은 이기설에 대해 논한 것이다. 「여조중근(與曺仲謹)」 8편 역시 심성설과 이기설에 대해 토의한 것이다. 전통적인 이기설에 근거해 풍부한 선유들의 학설을 인용,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잡저 가운데 「취정록(就正錄)」은 저자가 1895년 봄부터 1900년 4월까지 장복추 밑에서 수학하면서 스승의 언행을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상세히 기록한 글이다. 「심설의변(心說疑辨)」에서는 심의 활(活)과 영(靈) 및 성정(性情), 사단칠정 등과 이기설과의 상호 관계에 대해 31항목으로 나누어 자신의 견해를 개진(開陳)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