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정지호(鄭之虎, 1605~1678)의 자는 자피(子皮), 호는 무은(霧隱),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1637년 문과에 급제한 후 도승지, 대사간,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당쟁에서 초연하였으며, 권세에 아부함이 없이 자기의 소신대로 일을 처리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자 사후 집안에 전해오던 상자 안에 저자의 시문이 약간 보관되어 왔는데, 저자의 10대손인 정운형(鄭雲䪫)이 타인의 문집이나 문헌에서 찾아 모으고 저자와 묘도문, 제문 등을 합쳐 3책으로 만들었다. 1934년 정규환(鄭圭煥)이 간행하였다.
5권 3책. 석인본.
『무은문집』은 천지인 3책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책 권두에 문집 전체의 목록이 기재되어 있고, 3책 권말에 정낙진(鄭洛鎭)·정홍진(鄭弘鎭)·정운형(鄭雲䪫)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1책은 권1·2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에 시 64수, 부(賦) 1편이, 권2에 소(疏) 18편, 계(啓) 91편, 경연주사(經筵奏事) 5편이 수록되어 있다. 2책은 권3·4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3에 서(書) 23편, 서(序) 1편, 잠(箴) 1편, 명(銘) 1편, 송(頌) 1편, 잡저(雜著) 12편이, 권4에 잡저로 휘어집략(彙語集略)이 수록되어 있다. 3책은 권5에 해당되는데, 잡저로 「남한일기(南漢日記)」, 「호종록(扈從錄)」과 부록으로 저자의 가장(家狀)·묘갈명·돈유문(敦諭文)·사제문(賜祭文)· 제문(祭文)·위장(慰狀)·만장과 연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 가운데 「상시폐십조소(上時弊十條疏)」는 1677년(숙종 3) 시폐 10조를 올린 것이다. 파둔전(罷屯田)·파흥리(罷興利)·금사치(禁奢侈)·파영작(罷營作)·재성(裁省)·군기(軍器)·감공부(減貢賦)·엄과장(嚴科場)·칙양전(勅兩銓)·인구(引咎) 등으로 각 조항마다 자신의 견해를 소상하게 밝힌 명문이다. 잡저 가운데 「강명설(剛明說)」은 사람은 성질이 꼿꼿하고 두뇌가 명석해야 자기의 주관이 확립된다는 내용의 논설이며, 「자신설(自信說)」은 사람이 제 능력이나 가치 또는 어떤 일의 보람에 대해 자신을 가지고 독창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논술한 글이다. 「휘어집략」은 심성(心性)·체용(體用)·호오(好惡)·성(誠)·중(中)·인의(仁義)·충신(忠信)·낙도(樂道)·천명(天命) 등의 용어를 열거해 자신의 해석과 아울러 출전을 밝히고 있다. 「남한일기」는 1636년(인조 14) 12월 13일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의 일기이다. 병자호란 당시 임금을 호종(扈從)하고 남한산성에 들어갔던 일과 그때 겪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또한 「호종록」에는 병자호란 때 임금을 호종하고 남한산성에 들어갔던 신하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남한일기」와 「호종록」은 병자호란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경인문화사에서 한국역대문집총서 1807번으로 영인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도록 온라인으로 원문 서비스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