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은 한 민족의 기본적인 생활양식과 정신문화의 총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국에서 민속학은 일제강점기인 1920∼30년대에 태동했으며, 외국 민속학을 수용하면서 발전해 왔다. 한국 민속학은 사회민속, 생업민속, 의식주 민속, 민속 신앙, 일생의례, 세시풍속, 민속놀이, 민속 문학, 민속 예술 등을 주요 연구 영역으로 하여 전통사회의 민중 문화나 민족 문화의 형식과 내용, 특히 민속의 존재 양상과 역사적 변화상을 해명하는 데 기여해 왔고 현재는 민속이나 전통과 같은 과거의 문화뿐만 아니라 현재와 일상문화로 관심 영역을 확장하였다.
민속학은 민속(民俗), 다시 말해 민(民)의 속(俗)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민’과 ‘속’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민속학의 성격은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대체로 속(俗, lore)은 좁게는 전승 지식이나 지혜를 뜻하며, 넓게는 문화를 의미한다. 민(民, folk) 역시 시대나 국가 그리고 그것을 정의하는 학자의 입장에 따라 ‘서민’, ‘상민’, ‘민중’, ‘민족’ 등으로 조금씩 범주를 달리한다. 민속의 정의에서 민중이나 서민 등의 기층문화를 강조하는 측면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민속학이 축적한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본다면, 민속은 ‘한 민족의 기본적인 생활 양식과 정신문화의 총체’로 정의할 수 있으며, 민속학은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민속학을 지칭하는 용어는 각국마다 조금씩 다르다. 영미권 어휘인 포크로어(folklore)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용어이다. 민속학의 발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 독일에서는 폴크스쿤데(Volkskund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동아시아 세 나라는 모두 영어 folklore의 번역어인 민속학(民俗學)이란 한자 용어를 사용해 왔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한국 민속학은 시대적 상황상 일본 민속학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으며, 영국, 독일, 미국 등 서구 민속학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용하면서 발달하였다.
근대 학문으로서 민속학은 19세기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태동, 발달해 왔다. 학문의 전개 과정에서 국가별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다른 근대 학문 분야와 비교해 민속학은 토착적 성격이 강한 편이다.
먼저 독일의 경우 세계 민속학사에서 그 위상이 특별하다. 낭만주의에 기초한 독일 민속학은 민족정신의 탐구를 위해 고대 문화를 탐구했다. 낭만주의 민속학의 정립과 발달에 기여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와 그림 형제(Brüder Grimm)이다. 그들은 민족 혼의 표현물인 민담, 전설, 민요 등과 같은 구비문학과 의례를 비롯한 풍속의 연구를 통해 민족의 특성을 밝히고자 했다. 그림 형제가 전설이나 민담을 수집, 정리해 편찬한 『어린이와 가정동화(Kinder und Hausmärchen)』는 독일 민족의 민중 정서를 해명하려 한 낭만주의 민속학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한편 19세기 중엽 독일 민속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헬름 하인리히 릴(Wilhelm Heinrich Riehl)은 민속학의 체계화를 시도하여 독립된 학문으로 자리 잡는데 기여했다. 그는 과학적인 현장 조사를 강조했으며, 1858년 『학문으로서의 민속학』을 발표하여 독일 민속학의 초석을 다졌다. 이를 통해 민속학의 제도화가 진전되었으며, 민속학 관련 학술 단체의 조직화와 학회지 발간 등이 이루어졌다. 1904년에는 ‘독일민속학협회 연합(Verbandes Deutscher Vereine für Volkskunde)’이 정식으로 발족했으며, 이 단체는 1963년 ‘독일민속학협회(Deutscher Gesellschaft für Volkskunde)’로 개칭한다.
20세기 초를 전후해 독일 민속학은 전통 편향성에서 벗어나 산업 사회로 관심의 폭을 확대하였다. 이 시기 사회 계층의 다양한 분화 과정과 함께 민중 개념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나타났다. 한스 나우만(Hans Naumann)은 모든 민속 문화는 상층부에서 생산되며 하층민이 이를 수용한다는 이른바 ‘하강 문화유산론(gesunkenes Kulturgut)’을 주장했다. 반면 윌 에리히 포이케르트(Will-Erich Peuckert)는 노동자와 도시 민중 등을 민속의 주체로 확장하면서 현대 민속학의 기초를 새롭게 닦고자 하였다. 이후 독일 민속학은 나치 정권의 영향 속에서 성장하였으나, 1945년 패전 이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현대 독일 민속학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적극적으로 조응한 연구를 수행하며, 과거보다는 현재의 문제에 학문적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특히 튀빙겐 대학(University of Tübingen)의 헤르만 바우징거(Hermann Bausinger) 교수는 실증적인 일상 연구로 민속학의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 민속학(tradition populaire)은 대혁명 이후 국민 국가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켈트족 문화유산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시작되었다. 1882년 민속학회가 처음 설립되었고 폴 세비요(Paul Sébillot)나 생티브(P. Saintyves) 등은 주로 구비문학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생티브는 민속학을 문명국가에서 민간 생활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하고 있다. 20세기 초에는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증여론』이나 아놀드 반 게넵(Arnold van Gennep)의 『통과의례』 등이 출간되어, 사회 · 문화적 의례나 상징을 중심으로 한 민속학 연구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민속학 역시 세계 민속학의 형성과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846년 영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톰스(William J. Thoms)는 1846년 런던의 주간지 『엔서니움(The Athenaeum)』에 민간의 구습(Popular Antiquities)과 민간 문예(Popular Literature)를 총괄하고 대신하는 용어로 민속(folklore)을 제안했다. 여기에서 민속은 전통적인 신앙, 전설, 풍속, 생활 양식, 관습, 종교 의례, 미신, 민요, 속담 등을 지칭하는 말이며, 이에 대한 민간의 지식을 의미한다. 1878년 톰스의 주도로 민속학회(The Folklore Society)가 설립되고, 학회지 『민속학(Folklore)』도 발간되었다.
미국민속학회(The American Folk Society)는 영국 민속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1888년에 설립되었으며, 초대 회장은 프란시스 제임스 차일드(Francis James Child)였다. 『미국민속학회지(The Journal of American Folklore)』 1호에는 빠르게 사라져 가는 잔존 민속을 수집한다는 방향성 아래, ‘옛날 영국 민속의 유산(발라드, 설화, 미신, 사투리 등)’, ‘미국 남부 흑인들의 민간전승’, ‘북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의 민간전승’, ‘프랑스계 캐나다, 멕시코 등의 민간전승’ 등을 연구 대상으로 명시하였다. 형성 초기에는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 등 미국의 인류학자와 인류학의 영향을 받았다.
미국 민속학의 대표적 학자인 리차드 도슨(Richard Dorson)은 1972년에 『민속학과 민속생활(Folklore and Folklife)』을 출판하면서 민속학을 크게 4가지 영역, 즉 구전 민속(Oral Folklore) · 사회 민속(Social Folk Custom) · 물질문화(Material Culture) · 민속 예술(Folk Arts)로 제시하였다. 구전 민속은 민간 설화, 민간 서사시, 속담, 수수께끼, 민간 언어 등이며, 사회 민속은 축제와 잔치, 오락과 놀이, 민속 의료, 민속 종교 등을 포함한다. 물질문화는 주로 민속 공예, 민간 건축, 민속 의상, 민속 음식 등을, 민속 예술은 민속극, 민속 음악, 민속춤 등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민속학이란 용어를 사용했으며, 학문적 출발 역시 빨랐다. 일본 민속학은 1880년대 진화주의 인류학의 수용을 통해 출발했다. 일본 민속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国男]는 1907년 ‘향토연구회’를 조직했고, 1913년 『향토연구』를 간행했다. 1930년대에는 야나기타가 주도하여 계획적인 민속 조사를 실시했고, 조사 보고서의 출판과 분류 색인 등이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 민속학이 독립 과학으로서 발전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민속학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전후(戰後)의 일이며, 1949년 ‘민간전승회’가 ‘일본민속학회’로 개칭하고부터이다. 일본 민속학은 민족의 생활 양식이나 상민(常民) 문화 전반을 연구 영역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구비문학 중심의 영미 민속학(folklore)보다는 독일 민속학(Volkskunde)에 가깝다.
중국 민속학은 1918년 북경대의 ‘가요학운동(歌謠學運動)’과 함께 태동했다. 이 운동에서 민속학이라는 개념이 나타나며, 1922년 주간지 『가요(歌謠)』의 발간사에서 민속학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5·4 신문화운동’의 배경 속에서 등장한 당시의 가요학은 민중의 언어와 창작에 대한 학자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후 중국의 민속학은 광주(廣州) 중산대학과 항주(杭州)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했다.
중일전쟁 시기 중국 민속학은 ‘민족’과 ‘인민’이라는 두 개의 개념이 강조되는 특징을 지닌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의 민속학은 가요학운동의 계승을 강조하며, 항일 근거지와 해방구에서의 민간문학 수집과 연구가 국가 차원에서 중시되었다. 한편 1980년대 초 개혁 개방과 함께 한동안 침체되었던 민속학 역시 부흥하는 모습을 보인다. 1983년 ‘중국민속학회(中國民俗學會)’가 창립되었고, 1985년에는 『민속연구(民俗硏究)』가 창간되었다. 현대 중국 민속학은 생활문화를 강조하며 중국 문화 일반을 아우르는 학문으로 발달해 나가고 있다.
한국 민속학의 뿌리로 18세기 실학을 소급하는 견해도 있지만, 근대 학문으로서 민속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920∼30년대이다. 1927년 5월에 발간된 『계명(啓明)』 19호에 최남선의 「살만교차기(薩滿敎箚記)」와 이능화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와 같은 민속학적 연구 논고가 게재되었다. 이듬해인 1928년에는 최남선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이 발표되었으며, 손진태 · 송석하 등 한국 민속학의 개척자들이 등장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처음 시작된 민속학 연구는 사상적으로 ‘문화민족주의’에 기반했으며, 민족의 특성과 정신을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1932년 송석하 · 손진태 · 정인섭 등은 ‘ 조선민속학회’를 창립하고, 1933년 학회지 『조선민속』을 창간하였다. 『조선민속』 1, 2호는 송석하가, 3호는 이마무라 도모[今村鞆]의 고희 기념으로 아키바 다카시[秋葉隆]가 발행했다. 송석하는 현장 조사를 강조했으며 무엇보다 민속 자료의 조사 · 발굴 · 보존에 기여했다. 또한, 송석하가 1934년에 발표한 「민속학은 무엇인가」, 1936년에 발표한 「초기민속학의 연구영역과 대상」 등은 한국 민속학의 성립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손진태는 한국 민속학의 연구 영역과 방법의 체계화에 중요한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1940년 『조선민속』이 폐간되고, 1948년 송석하의 죽음은 조선민속학회의 지속 동력을 잃게 했다.
광복 이후 한국 민속학은 학회 활동과 박물관 건립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1946년 최상수는 ‘전설학회’를 창립했다. 이 학회는 1954년 ‘ 한국민속학회’로 개칭했으며, 1957년 학회지 『민속학보』를 창간했다. 하지만 최상수 1인이 중심이 된 『민속학보』는 1958년 2집을 끝으로 더 이상 발간되지 않았다. 1957년에는 국어국문학회 내에 민속분과가 설치되었고, 1958년에는 임석재 · 임동권 · 이두현 · 김동욱 등에 의해 ‘ 한국문화인류학회’가 창립되었다. 초창기 한국문화인류학회에서는 민속학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으나, 민속학과 문화인류학은 점차 연구의 대상과 방향성에 견해 차이를 나타내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전통문화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정책적 실천과 맞물려 민속학 연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1961년부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연례적으로 개최되었으며, 1963년에는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이 설치되었다. 문화재관리국은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를 연차적으로 지정했으며, 1967년부터 ‘전국민속종합조사’에 착수하였다. 이 사업들은 국가의 정책적 필요에 의한 민속학의 동원이라는 측면에서 현재 민속학계에서 비판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민속학의 저변 확대 및 학문적 발달에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69년에는 임동권 · 홍윤식 · 최길성 · 김태곤 · 김선풍 등의 발기로 ‘한국민속학회’가 창립되었으며, 같은 해 학회지 『한국민속학』이 창간되었다.
1970년대는 민속학의 제도화와 독립 학문으로서 위상이 강화된 시기이다. 1974년에는 이두현 · 장주근 · 이광규에 의해 『한국민속학개설』이 출판되었다. 1975년에는 ‘ 국립민속박물관’, 1978년에는 사립 ‘ 온양민속박물관’이 설립되어 민속자료의 수집과 연구, 전시와 보존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민속학 관련 학과나 연구소의 설립이 활발했던 것도 1970년대의 성과이다. 원광대학교 민속학연구소(1971), 명지대학교 동북아시아민속학연구소(1976), 동아대학교 한국민속문화연구소(1978),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1979) 등이 1970년대 설립되어, 민속학이 제도화된 학문으로서 자리잡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79년에는 국립안동대학교에 ‘민속학과’가 독립 학과로서 개설되었으며, 이후 대학원 석 · 박사과정이 차례로 설치되었다. 민속학을 학부에서부터 대학원까지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한국학중앙연구원(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는 1982년 사회민속학과(사회학 · 민속학)가 설립되어, 민속학 석박사를 배출하고 있다. 1983년에는 민속의 국제적 비교 연구를 표방한 ‘ 비교민속학회’가 설립되었고, 1985년 학회지인 『비교민속학』을 창간하였다.
한편, 1970∼80년대 대학을 중심으로 권위주의적 군사 정부에 대항한 반체제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민중 문화의 상징으로서 무속 의례를 비롯한 민속이나 전통의 재발견, 재구성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각 대학에서는 탈춤동아리나 풍물패가 결성되어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대학마다 ‘민속연구회’가 결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서, 또한 민중 문화의 재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민속이나 전통을 강조 · 부각하는 모습이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탈춤, 풍물, 민요, 무속 등에 관한 민속학적 관심과 연구가 증가하기도 했다.
1990년에는 당시 진보적인 소장 학자들의 주도로 ‘한국역사민속학회’가 설립되었다. ‘역사과학으로서의 민속학’을 표방한 한국역사민속학회는 1990년 『역사 속의 민중과 민속』을 출간하였으며, 1991년부터 학회지인 『역사민속학』을 창간하여 현재까지 이어 오고 있다. 1997년 12월에는 안동대학교 민속학과를 중심으로 ‘실천민속학회’가 창립되었다. 실천민속학회는 현재학으로서의 민속학과 학문의 실천성을 강조하며, 학회지인 『실천민속학연구』를 1999년부터 발간해 왔다. 또한, 1997년에는 중앙대학교에 민속학과가 설립되었으나, 2013년 대학 당국의 구조 조정에 의해 폐과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민속학 관련 학회의 연합체인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가 결성되었다. 2004년 제1회 민속학자대회 조직위원회에는 강원도민속학회, 남도민속학회, 비교민속학회, 실천민속학회, 판소리학회, 한국구비문학회, 한국무속학회, 한국민속학회, 한국민요학회 등 9개 민속학 관련 학회가 참여했다. 2008년부터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는 국립민속박물관 및 지자체와 함께 ‘지방민속문화의 해’를 기획하고, 매년 지역을 옮겨 가며 학술 대회를 개최해 왔다. 이러한 학술 대회를 통해 ‘지역문화 창출’, ‘무형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승’, ‘다문화사회’, ‘글로벌문화’, ‘민속문화정책’ 등을 주제로 21세기 민속학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한 민족의 기본적인 생활 양식과 정신문화의 총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민속학의 정의에 따르면, 그 연구 영역은 매우 폭넓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의 민속학은 문화 과학임과 동시에 역사 과학의 성격을 지닌다. 주로 면접, 심층 면접, 관찰, 참여 관찰 등에 기반한 현지 연구(fieldwork)를 통해 주민의 생활과 민속의 공시적인 측면을 연구했으며, 문헌 연구를 통해 민속의 역사적 변화상 등을 탐구해 왔다.
초기의 민속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설화 · 민요 · 속담 등의 구비문학 연구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를 통해 민중의 심성 또는 민족정신을 해명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속학에서 생활문화의 측면이 강조되면서, 그 영역 역시 민속 예술 · 민속 신앙 · 민속놀이 · 의식주 · 일생 의례 · 세시풍속 · 물질문화 등으로 확장되어 왔다. 다음은 한국 민속학 개론서류에 나타나는 주요 연구 영역이다.
『한국민속학개설』(1974) | 『증보 한국민속학 개론』(1987) | 『한국민속학의 이해』(1994) | 『한국민속연구사』(1994) | 『민속학 첫걸음』(2022) | |||
---|---|---|---|---|---|---|---|
- 마을과 가족생활 - 관혼상제 - 의식주 - 민간신앙 - 세시풍속 - 민속예술 - 구비문학 |
- 의식주 - 통과의례 - 민간신앙 - 속신 - 생업의례 - 세시풍속 - 민속놀이 - 도시 민속학 |
- 민속사회 - 민속신앙 - 민속문학 - 민속예능 - 민속사상 |
- 민속문학 연구 - 민속종교 연구 - 민속사회 연구 - 민속예술 연구 - 민속물질 연구 |
- 사회 민속 - 생업 민속 - 의식주 민속 - 민속 신앙 - 일생 의례 - 세시 풍속 - 민속놀이 - 민속 문학 - 민속 예술 |
|||
〈표〉 민속학의 주요 연구 영역 |
사회 민속은 가족, 친족, 문중과 같은 혈연 집단이나 동계(洞契)를 비롯한 마을의 지연 조직 등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한다. 또한, 공동 노동 조직인 두레, 노동력의 호혜적 교환 체계인 품앗이 등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뤄 왔다. 특히 민속 전승의 모체로서 농촌 사회에 관한 관심은 사회 민속의 핵심적 연구 분야이다.
생업 민속은 농업이나 어업과 같은 직업 또는 생산 활동과 관련한 민속을 다룬다. 전통 사회에서 생업 민속은 특정한 지리나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을 영위하기 위한 문화적 적응의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뤄 왔다. 따라서 농업이나 어업 기술, 그것과 관계된 도구나 실천 관행 등은 생업 민속의 중요한 연구 분야이다.
의식주 민속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생활, 식생활, 주생활을 다룬다. 의식주는 물질로 구현된다는 점에서 물질문화 연구의 대상이 되는 한편, 지역 · 계급 · 민족 등의 집단 정체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이다.
민속 신앙은 민속 문학과 함께 민속학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구된 분야 중 하나이다. 한국인의 기층 종교인 무속을 비롯해 마을이나 지역 공동체 제의인 동제와 기우제, 가신신앙, 풍수, 점복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 업적을 축적해 왔다.
학자에 따라 ‘관혼상제(冠婚喪祭)’ 또는 ‘통과의례(通過儀禮)’라고도 하는 일생 의례는 인생의 고비나 기념할 만한 시기에 행해지는 의례를 연구 대상으로 한다. 출산 의례, 돌, 성년식(관례), 혼례, 회갑, 상장례 등 한국인이 생애 과정에서 겪는 주요 의례를 대상으로 기능과 상징적 의미 분석뿐만 아니라 역사적 변천과 문화 변동의 측면에서도 활발히 연구해 왔다.
세시풍속은 1년을 단위로 특정한 시기에 행해지는 민속으로, 주기성과 전승성 그리고 반복성을 지닌다. 세시풍속은 역법(曆法)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4계절의 변화 및 그에 따른 행동 양식이나 생활 행위와 관계된다. 민속학에서는 생업과 관련한 농경 세시,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년제의, 대보름으로 대표되는 공동체의 안녕과 화합을 목적으로 한 세시 행사에 관한 연구가 폭넓게 수행되었다.
민속 문학은 민속학 태동기부터 민속학 연구 그 자체와 동일시될 정도로 중요한 연구 대상이었다. 구비로 전승되는 신화, 전설, 민담, 민요, 무가(巫歌), 속담 · 수수께끼 등을 아우르며, 민속학에서 가장 활발히 연구된 분야라 할 수 있다.
민속 예술의 경우 판소리 · 민요 · 무악 · 농악과 같은 민속 음악, 민화 · 속화 · 무속화(무신도) · 세화(歲畫) 등의 민속 미술, 탈춤이나 꼭두각시놀음 등의 민속극 등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한다.
민속놀이는 줄당기기, 고싸움, 차전놀이, 팔매싸움 등 대동적(大同的) 성격이 강한 마을이나 고을 중심의 집단 놀이에 관한 연구가 중심이 되었지만, 아이나 여성 등 연령과 성에 따른 전승 주체에 초점을 맞춘 연구 성과도 적지 않다.
이처럼 민속학은 의식주나 생활 도구처럼 물질적으로 구현되는 구체적인 영역에서부터 종교관이나 세계관 등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연구 범위가 실로 다양하다. 방법론적으로 민속학은 위에서 소개한 개별 영역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하여 전통 사회의 민중 문화나 민족 문화의 형식과 내용, 그리고 민속의 존재 양상과 역사적 변화상을 해명하는 데 기여해 왔다. 하지만 상기한 영역 구분 속에서 이루어진 연구의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즉 개별 민속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 영역의 민속과 더불어 복합적 총체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속 연구에서 개별 민속을 중심으로 접근할 경우, 그것이 위치한 맥락에 따른 의미와 기능을 충분히 해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따를 수 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최근 민속학 연구는 그것을 실천하는 생활자와 맥락, 그리고 그 실천 양상을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민속학은 ‘도시 민속학’을 비롯해 새로운 연구 분야로의 확장과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왔다. ‘농촌관광’이나 ‘마을 만들기’와 같은 연구 주제는 그러한 시도를 반영하는 하나의 특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외국인 이주 여성’이나 ‘다문화’, ‘귀농 · 귀촌인’, ‘대안 공동체’ 등 현대 한국 사회에 새롭게 등장하는 집단과 현상에 관한 민속학적 연구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21세기 한국 민속학은 민속이나 전통과 같은 과거의 문화뿐만 아니라 현재와 일상 문화로 관심 영역을 확장하면서 학문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새롭게 형성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