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부인사의 창건 시기와 사찰의 연혁은 사적기(寺跡記)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여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시기에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라 제33대 성덕왕이 창건했다는 조선시대 문헌 기록과 여러 차례에 걸친 발굴 주1의 성과, 그리고 절 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의 양식 등을 근거로 8세기 초에 창건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부인사는 고려시대에 대장경의 봉안처로 유명하며, 문헌 기록을 통해서 이러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사』 권21, 세가(世家) 권53, 행지(行志), 『고려사절요』 권14, 권53 외에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명병서(彰聖寺眞覺國師大覺圓照塔碑銘幷序)」와 이규보의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 등을 통해서 부인사에 큰 홍수가 있었음과 부인사 승려들이 무신 집권에 항의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사실, 그리고 부인사에 『초조대장경』과 주17을 봉안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부인사의 대장경은 1232년(고종 19) 몽고의 제2차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 진각국사 천희가 머무르며 사세를 크게 떨쳤으며,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 당시 다시 불에 탔으나 1617년(광해군 9)에 주18. 이후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사찰 대부분이 불에 탔고, 1959년 대웅전, 응진전, 칠성각 등을 중창함을 시작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부인사지의 학술 조사는 1960년대에 신라오악조사단에 의하여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는 석탑과 초석, 탑재, 석등 받침돌 등이 소개되었다.
이후 1986년도에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종합적인 지표조사를 실시하였고, 1989년, 1991년에는 대구대학교 박물관이 1, 2차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1992~1993년에는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3차 발굴을 수행하였다.
팔공산 부인사지의 표기는 고려시대의 문헌자료를 통해서 부인사(符仁寺)로 기술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부인사(夫仁寺) 혹은 부인사(夫人寺)로 쓰여진 것을 알 수 있는데, 2차의 부인사지 발굴 조사를 통해서 후자에 해당하는 주3 주2이 수습되었다.
현재의 부인사지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웅전 터가 남아 있고, 그 남쪽으로 석등 1기와 배례석 1기가 있으며, 대웅전 터의 서쪽에는 쌍화사 석등(雙火舍石燈) 1기가 서 있다. 그리고 대웅전 터의 남쪽 좌우로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는 3층석탑이 동서에 배치되었다.
3층석탑의 서탑은 초층, 2층 주4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제 위치에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동탑은 주5 일부만 유존해 있다. 부인사지의 남쪽에는 창건 당시에 축조한 거대한 주6가 남아 있는데, 그 길이는 동서로 55m가 되며, 높이는 3∼4m이다.
축대에 사용된 석재는 100㎝×150㎝ 내외의 주7, 장방 석재를 주8 상하층이 엇물리게 한 바른층쌓기 수법으로 축조하였다. 축대의 중앙에는 남쪽향으로 낮은 대지에 연결된 계단이 마련되었고, 남쪽으로 10m 위치에는 중문지가 위치하였는데, 중문지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현재 주9이 남아 있다.
중문지에서 정남쪽으로 진입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진입 도로의 좌측에 은통당(隱通堂)이란 글자가 음각된 팔각 주10 부도 1기와 석종형 주11 1기가 배치되었고, 남쪽으로 경판고(經板庫)의 터로 추정되는 주14가 주15 있다.
경판고 건물지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형식에 남쪽 1칸은 건물을 받치는 주12만 서 있어서 일종의 주13 구실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의 주초석은 장방형 자연석을 다듬어 상면에 돌출된 원주좌(圓柱座)를 각출하여 놓았으며, 기단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면을 맞추어 놓았는데, 북쪽과 동쪽은 심하게 교란되어 있다. 담장석으로 추정되는 석열은 남쪽 축대에 접하여 시작되며, 축대에서 8m 북쪽 지점에 4매의 초석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대문지로 추정된다.
부인사의 남쪽 팔공산 순환 도로 옆 포도밭에 당간지주(幢竿支柱)가 유존해 있는데, 현재의 상태는 지주의 하부와 주16의 부재 일부만 남아 있다. 당간 주20의 중심좌는 방형 기단 석상에 원형 주자를 각출시킨 상태로서 중심부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