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시 노음산(露陰山)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북장사(北丈寺)라고도 했다. 833년(신라 흥덕왕 8) 진감국사 혜소(眞鑑國師慧昭, 774~850)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하동 쌍계사(雙磎寺)의 진감국사비에 따르면 혜소는 당나라에 가서 범패(梵唄)를 배우고 돌아와 상주 장백사(長栢寺)에서 선(禪)을 가르쳤고 이때 배우려는 이들이 구름처럼 모였다고 하며 이후 지리산으로 옮겨 주석하면서 옥천사(玉泉寺)를 창건했다고 한다.
여기서 장백사는 상주 남장사(南長寺)의 전신으로서 혜소가 귀국 후에 상주 지역에서 활동하며 크게 영향력을 미쳤음을 볼 수 있다. 북장사는 남장사, 갑장사(甲長寺), 승장사(勝長寺)와 함께 상주의 사장사(四長寺)로 불린다.
1617년(광해군 9)에 편찬된 상주 읍지 『상산지(商山誌)』에는 노음산의 뒤에 북장사가 있다고 적었는데, 노음산은 북쪽의 석악(石岳), 남쪽의 연악(淵岳)과 함께 상주의 삼악(三岳) 중 하나인 노악(露岳)으로 노악산(露嶽山)이라고도 한다. 산의 동남쪽 기슭에 남장사가 있고 서쪽에 북장사가 자리잡고 있다. 「북장사사적기」(1646)에는 산 위의 수미굴(須彌窟) 가운데 돌기둥이 있는데 아래는 좁고 위는 넓어서 하늘을 떠받친 기둥처럼 보여 천주산(天柱山)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옛 절터의 기왓장에서 천주산이라는 주1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북장사 관련 내용이 나오지 않아 고려시대 이후 절의 연혁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에 1519년 기묘사화와 관련된 인물이 이 절에 피신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서 조선 전기에도 어느 정도 사세가 유지되었음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주2로 소실되었다고 하며, 1624년(인조 2) 이곳에 온 중국 승려 10여 명이 중건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1650년(효종 1)에 화재로 주3 서묵(瑞默) · 충운(忠雲) · 진일(眞一) 등이 중건했고, 1657년에 다시 불이 났다. 1658년에는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응순(應淳)이 궁현당(窮玄堂), 취건(就健)이 원통전(圓通殿), 일휘(一輝)가 은현당(隱賢堂)을 각각 세우고, 행종(幸宗)이 남암(南庵)을 옮겨서 만월당(滿月堂)을 세웠다고 한다.
1660년(현종 1) 여행(呂行)이 극락전(極樂殿) 불사를 시작하여 8년 만에 완성했고, 1663년 충운이 심검당(尋劒堂)을 짓고, 1669년에는 문식(文湜)이 적요당(寂寥堂), 1673년 처웅(處雄)이 명월당(明月堂)을 건립했다. 1676년(숙종 2) 승은(勝訔)이 대향로전(大香爐殿), 청윤(淸允)이 소향로전(小香爐殿)을 세웠고, 삼주(三周)가 백련당(白蓮堂), 승은이 향적전(香積殿)을 조성했으며, 그 이듬해에 행종이 육화당(六和堂)을 건립했다.
1685년 주학(主學)이 삼강실(三綱室)을, 1688년에는 선욱(禪旭)이 황학루(黃鶴樓) 28칸을 세웠으며, 1692년에는 승은이 한송당(寒松堂)을 지었다. 1695년에는 사찰(思察)이 궁현당(窮玄堂)을 중건했고, 1699년 옥청(玉淸)이 명부전(冥府殿), 1704년 화장전(華藏殿)을 조영했다. 1736년(영조 12)에 다시 불이 나자 사찰의 대중들이 힘을 합쳐서 극락전 · 명부전 · 만월당 등을 재건했다.
1875년(고종 12) 운봉(雲峯)이 극락전을 중건했고, 1880년에 기봉(奇峰)이 만월당을 중수한 뒤 수월암(水月庵)으로 개칭했다. 1900년에 기봉이 다시 수월암을 중수하고, 이듬해에 향각(香閣)을 보수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의 말사로서, 1660년에 지은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 산신각 · 요사채 정도가 남아있다.
1688년 학능(學能) 등이 그린 높이 13m, 너비 8m의 북장사 영산회 괘불탱이 북장사를 대표하는 보물로 지정된 중요 문화재이다.
또 극락보전 내부에는 1676년에 향나무로 제작된 2m 높이의 상주 북장사 극락보전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 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삼층석탑, 목조 주4, 목조 삼전패(三殿牌),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과 함께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