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건물. 1974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원래 경희궁의 정전(正殿)이었는데 민족항일기인 1926년 현 위치로 옮겨져 현재 정각원(正覺院)이라는 법당으로 쓰이고 있다.
일본인들이 강제로 철거하여 팔아 넘긴 탓으로 원형이 크게 파손되었고, 교실 · 체육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많이 변형되었다. 현재는 불교식 의례를 행하기에 알맞도록 내부가 변경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1가에 있는 원래의 터에는 현재 기단부와 전계석(殿階石)이 남아 있는데, 위아래 2단으로 되어 있던 월대 가운데 상월대(上月臺)가 파손되었고, 기단 석축도 헐고 나서 다시 쌓은 것이다.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고 정령(政令)을 반포하던 곳인 만큼 남향으로 놓였으며, 경희궁 안에서는 가장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장엄한 건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위에는 사방에 행각(行閣)을 두르고 앞뜰에는 돌을 깔고 품계석을 세웠다. 2중 기단 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춧돌을 앞면에 6개, 옆면에 5개 배열하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가로 5칸, 세로 4칸 규모로 평면을 구성하였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를 놓고 평방(平枋)없이 창방(昌枋)을 얹었으며, 기둥이 있는 바로 위쪽에만 공포(栱包)를 배열한 다포계(多包系) 주심포식(柱心包式)건물이다.
공포의 밖은 이출목(二出目)으로서 포작(包作)으로 되어 있고, 안쪽은 전부 보머리 모양으로 처리되어 있다. 기둥 사이에는 공포 대신 화반을 놓아 장여를 받쳤고 장여 위에 바로 도리를 얹었다. 천장은 소란반자로 마감하였고 한복판에 움푹 들어가게 조정(操井)천장을 만들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용마루에 취두(鷲頭), 합각마루에 용두(龍頭), 추녀마루에 잡상(雜像)을 두루 갖추고 있어 대궐의 정전다운 품격을 갖추고 있다.
1617∼1620년 사이에 경희궁을 창건할 때 지어진 건물로서 창경궁 명정전과 함께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현재 경희궁터 일곽에 원래의 숭정전 건물을 그대로 모방한 새 숭정전이 건립되고 그 일곽 건물도 복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