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의 학자. 한재이목(李穆)의 사당으로 1848년(헌종 14)에 세운 옛 사당과 1974년에 세운 새 사당이 있다.
옛사당은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이며, 일주문(一柱門)과 담장으로 둘려 있다. 몹시 퇴락상태에 있고 또 위쪽에 새 길이 개설됨에 그 형편에 따라 후손들이 새 사당을 신축하였다. 새 사당은 건평 36㎡쯤 되는 콘크리트집이다. 여기에는 1717년(숙종 43)과 1722년(경종 2)에 추증(追贈)한 교지가 함께 보존되어 있다.
이목은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생으로 성균관 유생 때 왕대비가 성균관에 음사(淫祠)를 꾸미고 무당을 부르자 이를 쫓아냈고 한편 유생과 더불어 윤필상(尹弼商)을 탄핵하다가 공주로 귀양가기도 하였다.
1495년(연산군 1)에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뽑혀 사가독서하였으나 1498년 무오사화에 윤필상의 모함으로 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과 함께 사형되고, 1504년 갑자사화 때 다시 부관참시되기도 하였다. 뒤에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