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성지(性之). 안정숙(安廷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순(安純)이고, 아버지는 목사 안상원(安相元)이다. 어머니는 심익(沈翼)의 딸이다.
1717년(숙종 43) 생원시에 합격하고,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746년에 정언(正言)·지평(持平) 등을 거쳐 1747년에 헌납(獻納)으로 재임할 때에, 탕평책을 반대하다가 수금된 윤급(尹汲)·송영중(宋瑩中)의 석방을 주장하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관에 복귀하여 수찬(修撰)·교리(校理) 등을 지냈다. 그러나 잦은 직언으로 왕의 미움을 사게 되어 1751년에 다시 파직되었다.
2년 뒤에 부교리로 재등용되어 승지 등을 역임하고 1760년에는 울산부사로 나갔다. 이듬해에 대사간이 되어, 영조에게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진현(進見)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다가 또 삭출되었다. 그 뒤 다시 대사간에 복귀되었으며 형조참판과 판서를 거쳐 판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