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바탕에 채색. 세로 170.9㎝, 가로 90.0㎝. 일본 사이후쿠사(西福寺) 소장. 구도라든가 형태, 필선(筆線) 등에서 희귀한 조선시대 양류관음도의 기준작품이 되는 걸작품으로서 흔히 주야신도(主夜信圖)로 알려져 있다.
자색(紫色)으로 물들인 비단 바탕에 섬세하고 활달한 필선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채색한 금선묘(金線描)로서 배치구도가 안정감은 있으나 형태는 다소 경직된 느낌을 준다.
푸른 바다에 둘러싸인 암굴 속에 앉은 관음보살이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른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은 장면을 그린 이 양류관음도의 오른쪽 절벽에는 버들개지를 꽂은 정병(淨甁)이 보인다.
특히, 관음보살의 머리 윗부분에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따로 강조하여 그려 모신 대신, 보관에 화불(化佛)을 그리지 않고 있어 고려시대 양류관음과 비교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조선시대 양류관음도의 보관에 화불이 표현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라 하겠다.
화기에는 단지 ‘공덕주함안군부인윤씨(功德主咸安郡夫人尹氏)’라고 씌어 있는데, 공덕주는 함안 본관의 윤씨이며, 위계는 군부인으로 해석되며, 이동주(李東洲)는 이 양식과 비교하여 태종의 손자 옥산군(玉山君, 1429∼1490)의 부인 함안윤씨로 추정하고 있다.
이 당시는 세조 등 왕실종친이 불교를 신봉해서 원각사를 창건하는 등 숭불정책을 의욕적으로 실시하였기 때문에 이런 배경과 함께 15세기 말경에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왕실발원의 이 그림은 고려불화의 화려한 귀족적 분위기를 이어받은 질적으로 뛰어난 작품으로서 조선시대 양류관음도연구에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