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의 크기는 둘레 18.84m, 높이 2.1m이다.
이광륜은 여주인으로, 자는 중임(仲任), 고려조 문절공이행(李行)의 6대손으로 청양군 비봉면 방한리 신기동에서 1546년(명종 1) 12월 7일 출생하였다. 33세에 효행으로 추천을 받아 생원시에 응시하였고 문소전참봉으로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울에서 경주로 피난하다가 조헌(趙憲)이 창의하였다는 말을 듣고 같은 해 7월 향병 300여명을 모아서 청주성 탈환을 위하여 떠났다. 8월 1일 청주성대첩에 성공하고 8월 18일 금산싸움에서 조헌, 영규(靈圭)등과 함께 전투중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 뒤 조정에서 ‘자헌대부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에 추증하였다.
묘소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망주석이 세워져 있다. 묘비는 봉분 인근이 아니라 상석 바깥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놓여 있다. 묘비에는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행문소전참봉(行文昭殿參奉) 시의헌공(諡毅憲公) 여주이공광륜지묘(驪州李公光輪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봉분을 두른 호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 등은 모두 최근에 새로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