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고려 후기 문신이자 문인이다. 1189년(명종 19) 사마시 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와 감수국사(監修國史)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한 명문장가로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과 「 동명왕편(東明王篇)」,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 등 다수의 문집과 글을 남겼다.
천도 당시 강화로 옮겨 와 살다가 1241년(고종 28) 9월 74세로 사망한 뒤 진강산 동쪽 기슭에 묻혔다. 묘지명에 “명산 옆에 들이 널리 널리 펼쳐져 있고 봉우리가 우뚝 우뚝 솟아 있다.”라고 공의 장지(葬地)를 묘사하였다. 조선시대 지지(地誌)에는 진강산 동쪽 기슭, 백운동(白雲洞)에 묘소가 있다고 전한다.
이규보선생묘는 강화 진강산 동쪽에 연접한 덕정산의 남동쪽 지맥에서 뻗어내린 낮고 편평한 구릉에 자리한다. 봉분은 지름 3.8m의 원형이며 뒤편에 꼬리[용미(龍尾)]가 이어져 2단으로 조성된 사성(莎城)과 연결된 모습이다. 봉분 하단에는 현대에 설치된 병풍석이 조성되어 있다.
봉분 전면에는 2단의 계체석이 설치되어 있다. 1단 계체석 아래로 상석과 향로석, 4각 장명등이 세워져 있고, 좌우에 석인상과 석양, 망주석이 한 쌍씩 배치되었다. 봉분 전면 우측에는 ‘고려이상국문순공하음백규보지묘(高麗李相國文順公河陰伯奎報之墓)’라 새겨진 묘비(1919년 건립)가 세워져 있으며 진양진씨(晉陽晉氏)와 합장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묘역 내 석물 가운데 사각기둥형 몸체에 큰 머리를 얹은 장승 형태의 고려시대 양식 석인상 2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후대에 제작된 것이다. 봉분과 사성 등의 구조도 후대에 변형되어 매장 당시 묘제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묘역 좌측 아래에는 영정을 모신 유영각(遺影閣)과 묘역정비기념비(1991년 건립), 이규보선생문학비(1983년 건립)가 있다. 우측에는 신도비와 재실인 사가재(四可齋)가 건립되어 있다.
이규보선생묘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까치골길 72-17(길직리 산115)에 있다. 1960년대 후손들이 묘역을 정화한 데 이어 1980년대 유영각과 사가재, 문학비 등을 건립하는 등 대대적인 정비 사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1972년 5월 4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묘역의 면적은 668.9㎡이며 여주이씨 문순공파 대종회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묘역의 구조와 석물은 후대에 정비되어 본래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시대 대표적 문신이자 문장가인 이규보의 생애와 강도 시기 강화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