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은 병부시랑(兵部侍郎)이었다. 927년(경애왕 4) 2월에 중국 후당(後唐)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때 당나라로부터 검교공부상서(檢校工部尙書)를 하사받았다.
아울러 함께 간 부사(副使) 병부낭중(兵部郎中) 박술홍(朴術洪)은 겸어사중승(兼御史中丞)을, 판관(判官) 창부원외랑(倉部員外郎) 이충무(李忠武)는 겸시어사(兼侍御史)의 관직을 받았다. 사행의 목적이 무엇이었으며, 또 언제 돌아왔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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