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진 의병장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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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진 의병장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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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에 있는 장사진 의병장을 기리기 위한 사당. 비.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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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에 있는 장사진 의병장을 기리기 위한 사당. 비. 시도기념물.
내용

1997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시 약관(弱冠)의 나이로 창의하여 적을 크게 무찌른 장사진 의병장을 기리기 위하여 충렬사(忠烈祠)와 고리비(故里碑)를 일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장사진은 임진왜란 초 군위현(軍威縣)의 교생(校生) 신분으로서 1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군위·인동(仁同) 지역의 왜적을 공격하여 큰 전과를 거두었으나 1592년 9월 왜적과 분전하다가 끝내 순절하고 말았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수군절도사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당시의 기본사료인 『초본징비록 草本懲毖錄』과 『선조수정실록 宣祖修正實錄』에는 장사진을 곽재우(郭再祐)·김면(金沔)·정인홍(鄭仁弘)·김해(金垓) 등과 함께 경상도의 대표적 의병장으로 평가하였다.

고리비는 1753년(영조 29) 군위현감 남태보(南泰輔)가 장사진의 충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웠다. 전면에는 '국상증수장사진고리(國殤贈水使張士珍故里)' 라고 기록했고, 뒷면에는 그의 행적을 새긴 비음기(碑陰記)가 있다.

장사진을 제향하는 충렬사는 창건연대가 미상이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고, 그 뒤 초가삼간을 중건하였다. 1937년 군위군 향중사림(鄕中士林 : 문화유씨(文化柳氏)·용궁최씨(龍宮崔氏)·효령사공씨(孝令司空氏)·행주은시(幸州殷氏) 등)에 의해 현재의 건물로 중건되었다.

참고문헌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초본징비록(草本懲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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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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