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도승지,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자문(子文)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21년(광해군 13)
사망 연도
1692년(숙종 18)
본관
해주(海州)
주요 관직
형조참판|경상도관찰사
정의
조선 후기에, 도승지,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문(子文). 정원희(鄭元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흠(鄭欽)이고, 아버지는 정효준(鄭孝俊)이며, 어머니는 이진경(李眞卿)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52년(효종 3) 성균관 시험에서 1등하였고,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장령 등을 지냈다. 1660년(현종 1) 장령으로 대간에서 목사 처리를 잘못한 혐의를 받고 있던 개성유수 남노성(南老星)을 탄핵하는 데 반대하였고, 약방 입진을 거부하는 국왕에게 간언하였다.

1663년 양주목사로 나갔으나 균전을 이행하지 않은 죄목으로 파직되었고, 1668년 진하사 겸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을 다녀왔다. 1674년 강계부사로 나갔으며 곧 월경 범죄자를 잘못 다스린 죄로 직첩을 환수당했다. 1675년(숙종 1) 승지로 승진하여 국왕의 질책을 받아 물러나 있던 윤휴(尹鑴)를 구원하기도 했다. 1677년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진위 겸 진향사의 부사로 청을 다녀와 청나라의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였다.

이 후 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면서 허목(許穆)의 서용 주장 등 남인 당론을 행사하였다. 이듬해 경신환국으로 광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서인으로부터 인물이 비루하고 복창군(福昌君)·복선군(福善君)의 심복이라는 이유로 관직에서 축출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재기용되어 대사간, 한성우윤·강화유수, 도승지·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이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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