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고려시대 일연(12061289)이 찬술한 『삼국유사』와 민지(12481326)가 찬술한 『오대산사적』에 전한다. 그리고 1972년에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을 해체 및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18~19세기에 제작된 5매의 탑지석의 명문에 정암사 창건과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의 조성 설화가 소개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나타나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라고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고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오대산사적』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갔을 때 문수보살의 화신이 나타나 자장율사에게 ‘신라에 돌아가거든 명주(강릉)의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이니 가서 주2 하라.’라고 하였다. 자장율사는 신라에 돌아와 어느날 한송정(寒松汀) 아래에서 어떤 거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는데, 거사가 “지난 날의 약속을 그대는 기억하고 있는가?”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거사가 지난 날 당나라 오대산에서 만났던 문수보살의 화신임을 깨닫고 곧장 태백산 칡넝쿨이 얽혀있는 곳을 찾아가니,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나무 아래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시자에게 “이곳이 문수보살께서 알려주신 곳이다.”라고 이르고 살나원(薩那院)을 세웠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탑지석명문」에 따르면,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 문수보살상 앞에서 7일동안 기도하니 문수보살이 나타나 부처님의 두골(頭骨)과 부처님의 어금니[佛牙] 그리고 사리 100과를 주면서 “그대의 나라에 인연이 있는 곳 중에 삼재(三災)가 닿지 않는 명승지가 있을 것이니, 그곳에 탑을 세우고 이것들을 안치하시오”라고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부처님 사리를 빼앗으려는 당나라 승려들을 피해 바닷가로 가서 문수보살에게 받은 사리를 용왕에게 맡겼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울산 포구에 도착하자, 용왕이 부처님 사리를 율사에게 주면서 얼마간의 수마노석을 주었다. 이에 율사는 문수보살이 알려준 갈반지에 수마노석으로 탑을 세웠다. 탑 아래에 법당을 세우고 정암사라 이름 지었다.
최근의 주3 결과를 통해,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전기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됨으로써 창건 이후 꾸준하게 사세를 유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주10 정선군 불우조에 정암사가 정암산에 있다는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조선 후기 정암사와 관련된 기록으로 1778년(정조 2), 취암 성우(翠巖性愚)가 편찬한 「정암사사적」과 「수마노탑중수사적」, 그리고 1874년(고종 11) 경운 이지(景雲以祉)가 편찬한 「수마노보탑중수지」 등이 전한다. 이러한 기록에서 정암사의 주11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713년(숙종 39)과 1719년(숙종 45)에 무너진 수마노탑을 중수하였다.
1769년(영조 45) 취암 성우가 정암사에 머물며 수마노탑의 중수를 주5, 이듬해(1770) 4월에 대대적으로 불사를 시작하였으며 왕실의 도움을 받았다. 구리 100근의 찰간을 서울에서 제작해 왔다.
1771년(영조 47) 12월에 천지가 진동하여 찰간이 내던져져 훼손되었다. 이듬해(1772)에 안성에서 구리와 놋쇠로 주4을 다시 만들어 운반해와서 설치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산불로 조전(祖殿)이 불타자, 1775년(영조 51)에 취암 성우가 중건하였다.
1858년(철종 9)에 대규(大奎)와 해월(海月)이 적멸궁 법당을 중수하였다.
1874년(고종 11)에 벽암 서호가 수마노탑 중수 불사를 시작하여 마쳤다. 당시의 중수를 기록한 「보탑중수유공기」에 왕실과 사대부가의 시주자와 금액 및 100여 명의 연화 · 시주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정암사의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금탑 · 은탑 · 마노탑의 3보탑이 있다. 마노탑은 사람이 세웠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주7을 우려하여 주6이 없는 중생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주8 전해진다.
국보로 지정된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은 모전석탑으로, 주9으로 제작되었다. 탑 앞의 배례석이나 여러 유물을 통해 볼 때, 처음 건립된 시기는 늦어도 고려시대일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적멸보궁은 1771년(영조 47)에 중수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18세기 초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