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에는 51기가 조사되었고 1997년에는 50기가 조사되었는데, 그중 25기는 망실되어 25기만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997년에 조사된 50기 가운데 36기는 동실묘(洞室墓)이고, 14기는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이다. 이 중 동실묘는 11기, 석실봉토분은 14기가 현재 남아 있다. 14기의 석실봉토분 중 3기(하해방31호분, 모두루묘지, 환문총)은 벽화분이다.
하해방고분군은 고구려 시기의 적석총이 1기도 없으며 석실봉토분이 약 30%에 달한다. 이러한 점에서 전체 무덤 가운데 고구려 시기의 적석총이 약 1/3을 차지하고 석실봉토분이 5% 내외인 통구분지 무덤군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묘제의 차이를 바탕으로, 하해방고분군의 조성 연대는 대체로 4세기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동실묘의 경우는 조성 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도 없고 분구도 망실되어 연대를 확정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6~7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규모가 작고 고구려 시기의 큰 무덤들과 혼재한다는 점을 바탕으로 고구려 이후, 즉 발해 시기의 무덤으로 보기도 한다. 이렇게 볼 경우, 집안하해방고분군은 5세기에 조성된 이래 발해 시기까지 사용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