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4년(우왕 10) 12월에 군·현의 미납된 세금을 추징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역사상 공부(貢賦)의 포흠(逋欠 : 사사로이 사용함.)이나 체납은 흔히 있는 일이며, 이를 독촉하기 위하여 공물청부업자가 등장하여 군현에 폐해를 끼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고려 말 우왕 때 이르러 세금독촉 전담기구인 추징색이 설치된 데에는 단순한 정국운영을 위한 국고(國庫)의 비축뿐만 아니라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이 관청에 이어 같은달에 설치된 무예도감(武藝都監)이 4년 후에 있을 요동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할 때, 추징색을 설치하여 세금징수를 재촉한 것은 바로 무예도감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서이고, 나아가 요동공격의 군량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로 생각된다.
직제 및 철폐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성계(李成桂) 등 신흥세력에 의한 위화도회군으로 요동정벌이 좌절되고, 우왕의 폐위 등으로 당시 계획이 끝까지 관철되지 못함으로써 추징색 역시 유명무실해졌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