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세(洪奉世)는 1498년(연산군 4)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흠중(欽仲)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원주판관(原州判官)을 지낸 홍정(洪淀),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홍임(洪任)이다.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홍경림(洪景霖)이다. 그는 중종 즉위 당시의 공적을 인정받아 정국훈(靖國勳)에 봉록되었다. 이후 익원군(益原君)에 봉해졌다. 어머니는 함양여씨(咸陽呂氏)이다. 부인 밀양박씨(密陽朴氏)는 의정부(議政府) 검상(檢詳) 박승약(朴承爚)의 손녀이다.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였다. 조광조 밑에서 청송(聽松) 성수침(成守琛) 형제 등과 교유하며 함께 공부하였다.
관직에 나아가려 하였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40세가 되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장례원(掌隷院) 판결사(判決事)에 올랐다. 이후 남양과 춘천에서 부사를 역임하였다. 수령만 여덟 차례 맡았으며 마지막에는 괴산군수와 여주목사를 지냈다.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는 기묘사화 이후 조광조를 많이 미워했던 권력자들이 옥졸들을 통해서 조광조를 괴롭히고자 하였는데, 뇌물을 써서 이를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 조광조가 유배지에서 죽어 용인(龍仁)으로 옮겨질 때 복잡한 정치 상황 때문에 다른 선비들이 외면하였지만, 홍봉세는 가서 곡을 하였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홍봉세는 기묘사화를 일으켰던 주축 중 한 명이었던 홍경주(洪景舟)의 조카였다. 명종 대 문음(門蔭)으로 예빈시(禮賓寺) 부정(副正)에 임명되었는데, 천재지변으로 국왕이 감선(減膳)하고 있는 와중에 관원들을 불러 연회를 열어서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75년(선조 8) 78세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