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예교는 다리 밑이 반원형이 되게 쌓은 다리이다. 아치교·무지개다리라고도 하며 대부분 석조로 되어 있다. 곡선형의 지간을 사용하므로 구조적으로 안정되고 미관이 아름답다. 기록에 따르면 서기전 4,000년경에 이미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건설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홍예교가 처음 가설된 것은 8세기경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 등이다. 홍예교는 궁전·사찰·성곽 및 일반교량으로 가설되었다. 창덕궁의 금천교, 선암사의 승선교, 수원성의 화홍교 등이 대표적이다. 홍예교는 긴 역사 동안 건설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많이 건설되는 교량 형식이다.
아치교 · 홍교 · 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다. 홍예교는 양지점을 수평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지지하였기 때문에 지점에서 발생하는 수평반력이 지간(支間)내 임의의 점에서 압축력으로 작용하므로 일반형교에 비하여 긴 지간의 교량을 건설할 수 있다. 특히, 곡형의 지간을 사용하므로 구조적으로 안정되고 미관이 아름답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널리 사용된 구조형식이며, 대부분 석조로 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서기전 4,000년경에 이미 메소포타미아지방에서 건설되었고, 바빌로니아 · 아시리아 · 인디아 · 중국 및 그리스에도 존재하였으며, 그 유적의 일부가 현존하고 있다. 특히, 로마시대는 홍예교의 중흥기로 당시의 로마인들은 홍예교의 역학적 특성을 정확히 파악한 뒤 구성하였다.
서기전 1세기말에 완성된 프랑스의 님(Nîmes)에 있는 퐁 뒤 가르(pont du gard)수로교는 길이 270m, 수면상의 높이 45m로서 상층에는 홍예교를 쌓고 그 위에 수로를 설치하여 완성한 이래 지금까지 그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세고비아(Segovia) 중심에 있는 이른바 ‘악마의 교’도 수로교로서 거친 절석을 그대로 쌓아올린 길이 800m, 높이 34m의 홍예교이며, 그 밖에도 로마인들은 지중해 연안이나 알프스 지방에 많은 홍예교를 가설하여 그 일부가 아직도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로마의 멸망 후 중세의 교량은 근 1,000여년을 두고 별로 큰 진보가 없었으나, 에스파냐나 포르투갈에서 이주한 무어족(Moor族)과 중국인에 의하여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중세의 홍예교는 대개 12∼20m 지간의 것이 많이 존재하지만, 점차로 큰 지간의 홍예교가 출현하게 되었다.
1188년 프랑스의 아비뇽(Avignon)에서는 베네제(St. Bénezét)에 의하여 론강(Rhône江)에 22경간(徑間)의 홍예교가 완성되어 4경간이 현존하며, 지간은 31∼34m이다. 1377년 이탈리아 테레소의 아다강교의 지간은 75.5m까지 이르렀으며, 이보다 큰 지간의 홍예교는 20세기 초에야 건설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에 홍예교가 처음으로 가설된 것은 8세기경 불국사의 청운교 · 백운교 · 칠보교 · 연화교이고, 일본에서는 17세기초(1603) 에도(江戶)시대이며, 중국에서 현존하는 것으로는 7세기 초 이춘(李春)에 의해 완성된 지간 37.4m에 이르는 안제교(安濟橋)가 가장 대표적인데, 이 밖에도 중국인들은 변화 있는 여러가지의 홍예교를 남겼다.
현존하는 국내의 홍예교는 일반형교에 비하여 짧은 기간(15∼18세기)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시대별 구조적 특성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건설 목적에 따라 분류하면 궁전교량 · 사찰교량 · 일반교량 및 성곽교량으로 구분할 수 있다.
궁전교량 중 현존하는 고대홍예교들은 2경간의 단순교이며, 잘 다듬어진 비교적 큰 크기의 화강석이 사용되어 홍예교의 부재수가 적고 반원형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교면은 3등분되어 중앙부는 왕의 통로이고 좌우로는 신하들이 통행하였기 때문에, 교폭이 넓고 교면은 비교적 평탄하다.
또한, 궁궐 안에 존재하는 인위적인 수로인 금천 위에 건설되었으므로 하폭이 좁고 경간장도 비교적 짧다. 대표적인 궁전교량인 경복궁의 영제교(永濟橋)는 1395년(태조 4)에 준공되었으며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폐허가 된 뒤 대원군에 의하여 실시된 경복궁의 중건과 함께 복원되었다.
조선 초기의 영제교와 대원군에 의하여 복원된 영제교는 2경간 아치교였으나 현재는 길이 13.3m, 너비 10.2m, 경간 2.9m의 단경간 홍예교로 남아 있다. 이 밖에도 1411년(태종 11)에 준공된 창덕궁의 금천교(錦川橋)는 길이 12.5m, 홍예교의 높이 1.4m, 너비 12.6m, 경간 2.5m의 2경간 홍예교이며, 1484년(성종 15)에 준공된 창경궁의 옥천교(玉川橋)는 길이 9.9m, 홍예교의 높이 1.4m, 너비 6.6m, 경간 1.9m의 2경간 홍예교로서 둘 다 현존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국민정신을 통일하고자 많은 사찰이 왕실이나 귀족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따라서, 부처를 모신 성스런 세계를 세속과 구별하기 위하여 중앙에 배치하고 높은 석축을 쌓은 다음 교량을 건설하여 연결하였으므로 사찰교량의 건설은 활발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사찰교량은 불국사의 교량들로 751년(경덕왕 10) 김대성에 의하여 24년이 걸려 완공된 것이다. 불국사의 교량은 홍예교와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18개 계단의 청운교, 16개 계단의 백운교, 10개 계단의 연화교는 홍예교를 포함하고 있으며, 8개 계단만으로 이루어진 칠보교가 있다.
조선 전기의 불교는 숭유배불정책으로 많은 핍박을 받았으나 조선 후기에는 어느 정도 불교의 중흥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따라 임진왜란 중 불타 없어진 사찰들이 중건되었다. 흥국사의 홍교(보물, 1972년 지정)는 길이 40m, 너비 4.2m, 홍예교의 높이 5.7m, 경간 11.3m의 단경간이다.
선암사의 승선교(보물, 1963년 지정)는 상류와 하류에 2개의 홍예교가 존재하며, 상류의 홍예교는 길이 15.5m, 너비 3.6m, 홍예교의 높이 4.5m, 경간 9.1m의 단경간이며 하류의 홍예교는 길이 22m, 너비 2.9m, 홍예교의 높이 3.1m, 경간 6.2m의 단경간이다. 건봉사의 홍교 및 송광사의 삼청교(三淸橋) 등도 홍예교로 준공되었다.
도로와 교량을 외세침략의 통로로 인식하던 조선 전기와는 다르게 조선 후기에는 도로 개설의 목적이 정치 · 군사적인 기능에서 경제적인 기능으로 바뀌어 갔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는 사회 간접자본의 확충을 위한 일반교량의 건설이 활발하였다.
이 당시 건설된 홍예교로서 전라남도 강진군에 소재한 병영홍교는 길이 27m, 너비 3.4m의 단경간이고, 전라남도 보성군에 소재한 벌교홍교(보물, 1963년 지정)는 길이 27m, 너비 4.3m, 홍예교의 높이 3.9m, 경간 7.8m의 3경간이며, 경상남도 창녕군에 소재한 영산만년교(보물, 1972년 지정)는 길이 18.3m, 너비 3m, 홍예교의 높이 4.3m, 경간 8.3m의 단경간이다. 이 밖에도 충청남도 논산시에 소재한 원목다리, 안양의 만안교, 강경의 미내다리, 영산의 유다리 등이 현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성곽교량 중 고대석조 홍예교는 대체로 화성천도계획 또는 잦은 외침에 대비하고자 하는 국방정책에 의하여 성곽의 일부로서 건설되었으며, 일부 교량은 두 지점을 연결하는 교량 본래의 기능 이외에도 수문기능을 겸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성곽교량인 화홍교는 길이 28m, 너비 8.3m, 홍예교의 높이 1.3m, 경간 2.6m의 7경간이며, 수원시 장안구 매향동에 위치한 수원성의 일부로 준공되었다.
그리고 전라남도 고흥의 고흥홍교는 상류와 하류에 단경간의 홍예교가 있는데 하류의 교량은 너비 2.9m, 홍예교의 높이 3.3m, 경간 6.5m이며, 상류의 교량은 너비 1.9m, 홍예교의 높이 2.9m, 경간 4.3m이다. 이 밖에도 강화의 홍교와 북한산성의 일부로서 건설된 오간대수문이 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홍예교는 긴 역사 동안 건설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많이 건설되고 있는 교량형식이다. 특히, 재료의 발달이 미미하였던 과거에는 대개 인장력에 비하여 압축력에 대한 저항능력이 우수한 암석이 교량의 재료로 쓰였기 때문에 큰 압축력을 받을 수 있는 홍예교의 건설이 빈번하였다. 또한, 미관이 아름답고, 형교에 비하여 긴 지간의 교량건설이 가능하였으므로 홍예교 건설이 활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