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우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 중종 대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지낸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31년(중종 26)
본관
남양(南陽)
주요 관직
토산현감
관련 사건
기묘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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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홍우세는 조선 전기 중종 대 토산현감을 지낸 문신이다. 중종 대 익명 게시문으로 사림들을 비방한 일에 심정·심사순 부자와 같은 일당으로 몰리면서 국문을 당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감옥에 갇혀 23차례나 형신을 받으면서도 무고함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억울함을 풀지 못하였다. 당시 사신(史臣)은 허항과 김미의 개인적 다툼 때문에 홍우세를 궁지에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정의
조선 전기 중종 대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지낸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홍우세(洪佑世)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정확한 출생 시기나 관력은 현재의 자료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증조할아아버지는 원주판관(原州判官)을 지낸 홍정(洪淀)이고, 할아버지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홍임(洪任)이다. 아버지는 홍경림(洪景霖)으로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지냈다. 그는 중종 즉위 당시의 공적을 인정받아 정국훈(靖國勳)에 봉록되었다. 이후 익원군(益原君)에 봉해졌다. 어머니는 함양여씨(咸陽呂氏)이다. 여주목사(驪州牧使)를 지낸 홍봉세(洪奉世), 중추부도사(中樞府都事)를 지낸 홍필세(洪弼世) 등과 형제이다.

주요 활동

1531년(중종 26) 토산현감으로 있으면서 기생 문제로 대간의 탄핵을 당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같은 해 종루에 익명으로 방문(榜文)을 걸어 사림(士林)들을 모함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대간으로 있던 허항(許沆)이 방문의 필적이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주도한 심정(沈貞)의 아들 심사순(沈思順)의 필적이라며 처벌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에 중종은 국문(鞫問)을 명하였다.

홍우세는 꿈을 가탁(假託)하여 정사(政事)를 말하였던 것이 문제가 되었고, 심정 · 심사순 부자와 같은 일당으로 몰리면서 국문을 받게 되었다. 홍우세는 공초에서 심정과 알지 못한다는 점과 자신의 발언 취지가 잘못 전달되었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23차례나 형신을 받으면서도 억울함을 강변하였지만, 결국 옥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사신(史臣)은 대간 허항(許沆)과 김미(金亹)가 개인적 감정 때문에 홍우세를 궁지에 몰아 죽게 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기묘사화를 주도한 남곤(南袞)이 먼저 죽은 상황에서 심정과 김안로(金安老)의 권력 다툼 속에서 발생한 일로 설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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