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덕에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서남향으로 배치되었다. 인종릉에만 병풍석을 갖추고 두 능을 난간석(欄干石)으로 연결하여 한눈에 왕릉와 왕후릉을 구분할 수 있다. 능상은 계체석(階砌石)을 놓아 3단으로 구성하고 상계에는 혼유석과 망주석을 배치하고, 중계에는 장명등을 중심에 놓고 문석인(文石人)과 석마(石馬)를 한 쌍 배치하고, 하계에는 무석인(武石人)과 석마를 세웠다.
능침 아래에는 정전(正殿) 3칸에 배위청(配位廳) 3칸 규모인 6칸 규모의 정자각이 있다. 본래는 정전 3칸 좌우에 익각(翼閣)을 갖추어 5칸이며, 배위청은 3칸으로 8칸 정자각의 제도로 건립되었다. 좌우 익각의 추녀 부분이 썩어 좌우 익각을 제거하고 풍판을 달아 6칸의 규모로 남게 되었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1753년에 세워진 표석(表石)과 비각(碑閣)이 있으며, 남쪽으로 향어로 끝에는 홍살문이 있다.
선릉과 같이 왕릉에는 병풍석을 갖추되, 왕후릉에는 난간석만을 둘러 격식의 차이를 두었다. 정자각은 조선 전기에 8칸으로 지어진 정자각이 비바람으로 처마부가 썩게 되어 정전의 익각을 제거하고 6칸으로 유지되는 사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