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순 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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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순 초상
오재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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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학자이자 문신 오재순(1727-1792)의 초상화.
정의
조선시대 학자이자 문신 오재순(1727-1792)의 초상화.
개설

오재순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는 문경(文慶), 호는 순암(醇庵)이다. 정조 때 대사헌, 대제학을 거쳐 판중추부사까지 오른 관리이자 제자백가에 두루 달통한 학자로 유명하다. 오재순을 총애했던 정조는 그의 겸손하고 말수가 적은 것을 가상히 여겨 초상화를 하사하면서 그 위에 ‘남들이 미칠 수 없는 것은 그 우직함이다(不可及者其愚)’라고 어필로 적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 그 초상화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재순초상」은 현재 반달 축 뒷면에 ‘순암 오문정공의 65세초상 이명기가 그리다(醇庵 吳文靖公 六十五歲眞像 李命基寫)’라는 종이 제첨이 불어있다. 이 글씨는 비록 오재순 사후에 쓴 것이지만, 이 초상화가 어진화가였던 이명기가 오재순의 나이 65세에 그린 작품일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내용

이 초상화에서 오재순은 오사모에 흑단령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안에서 마주 잡고 의자에 앉아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전신의좌상으로, 특이한 점은 관복의 주름을 통해 굴곡을 강조하고 음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입체감의 효과를 내고 있다. 운보문단雲寶紋緞의 문양도 옷 주름의 변화를 고려하여 굴곡을 따라 처리하였다. 쌍학흉배 또한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바느질을 구사한 자수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줄 정도로 사실적이다. 얼굴은 안면의 도드라진 부분과 오목한 부분을 선염을 가해 자연스럽게 묘사하여 18세기 후반 초상화의 사실적인 묘사를 보여준다. 더 나아가 세세한 붓질을 반복하여 얼굴의 형태와 명암을 자세히 표현했다. 특히 코를 중심으로 얼굴의 입체감을 나타내면서도 선묘 위주의 전통적인 기법도 얼굴 표현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사실성과 이상미가 어우러지는 전신傳神의 경지를 보여준다. 서양화법의 영향을 통한 입체감을 보여주려는 꼼꼼한 세부 묘사는 조선후기 초상화의 높은 수준을 대변해준다.

얼굴은 붓질의 가감을 통해 안면의 도드라진 부분과 우묵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묘사하였으며, 그 결과 실체감이 잘 드러나 있다. 정시하는 눈매는 관록있는 조정의 대신이자 대학자로서의 풍모를 보여주며, 구렛나루와 풍성한 턱수염의 정치한 묘사는 초상화가의 탁월한 기량을 말해준다.

가슴에 부착된 쌍학문양의 흉배는 화려한 색채감과 아울러 정교한 자수의 느낌을 그대로 생생하게 전할 정도이며, 단령의 주름이나 운보문단(雲寶紋緞)의 문양처리 역시 동색계열의 명과 암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옷이 지닌 굴곡과 질감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오재순초상」은 정조연간 신하들과 초상화를 통해 교유했던 분위기를 보여주는 호례이자, 18세기 후반 사대부 관복본 초상화의 한 전형으로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초상화: 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돌베개, 2009)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조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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