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마도1호선을 발굴하면서 마도해역에 대한 광역탐사 중 두 곳에서 선체 조각을 확인하였다. 하나는 2010년에 발굴한 마도2호선이고, 다른 하나는 마도 동북방 1.5㎞에서 발굴된 마도3호선이다. 마도3호선은 2011년에 발굴을 완료하였으나 유실의 위험이 있는 분리 가능한 선체만 인양하고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선체는 통째로 인양하기 위해 다시 매몰하여 두었다. 이 난파선은 지금까지 발굴한 고려시대 난파선 가운데 형태가 가장 잘 남아 있다. 배의 이물과 고물 및 돛대를 고정시키는 구조 등이 완형에 가까워 선박구조에 대한 전모를 보여준다. 마도3호선도 마도1·2호선처럼 다량의 목간(木簡)과 죽찰(竹札)이 발굴되었는데 전라도 여수지방에서 거둔 곡물과 먹거리를 대몽항쟁기 피난 수도인 강도(江都)로 운반하던 중 난행량이라 불리던 마도해역에서 침몰하였다.
화물로는 볍씨와 보리·밤 등의 곡물과 대나무상자 안에 생선뼈가 가득 차 있었다. 곡물과 함께 다량의 도기 항아리가 인양되었는데 그 안에는 젓갈류가 들어 있었다. 목간에는 상어〔沙魚〕, 말린 홍합〔乾淡〕, 전복 젓갈〔鮑醢〕, 생전복〔生鮑〕, 견포(犭脯) 등이 보인다. 장기 돌도 47점이 인양되었는데, 조약돌의 앞뒷면에 장군(將軍), 차(車), 포(包), 졸(卒) 등의 묵서가 있다.
목간과 죽찰에 적혀 있는 화물수취인으로 김영공(金令公)과 시랑(侍郞) 신윤화(辛允和) 및 유승제(兪承制)가 보인다. 여기서 유승제는 원종 초 우부승선(右副承宣)의 직위에 있었던 유천우(兪千遇)로 추정되며, 시랑 신윤화는 1260년(원종 원년)에 장군으로 몽고에 사신으로 다녀온 인물이다. 김영공은 최씨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아 1264년에는 교정별감(敎定別監)과 해양후(海陽候)에 책록된 김준(金俊)이 확실하다. 따라서 마도3호선은 강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기 직전인 1264년에서 1268년 사이에 전라도 여수(麗水) 일대의 곡물과 공물 등을 싣고 강도로 가려다 침몰한 조운선의 일종으로 보인다.
마도3호선에는 강도의 지배층에게 올리는 곡물과 먹거리가 실려 있었고, 여수일대에서 거둔 전복과 같은 여러 고급 식재료도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배에 승선한 승무원이 장기놀이에 이용했던 조약돌도 탑재되어 있었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식생활과 놀이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이 난파선에서 발견된 목간에는「우삼번별초도령시랑(右三番別抄都領侍郞)」,「중방우번상(重房右番上)」,「우삼번별초본소상(右三番別抄本所上)」등의 묵서가 있어 무신정권 당시 삼별초와 중방의 운영 실태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마도3호선은 세계제국 몽고에 저항하던 강도시기에 무신정권의 지방통제시스템과 조운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