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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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득
이세득
회화
인물
해방 이후 「하오의 테라스」 · 「단상」 · 「심상」 등을 그린 추상화가.
이칭
이칭
소묵(小默)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1년 11월 12일
사망 연도
2001년 4월 7일
출생지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지동리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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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하오의 테라스」 · 「단상」 · 「심상」 등을 그린 추상화가.
생애

호는 소묵(小默). 1921년에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지동리에서 출생했다. 1941년 함남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4월 도쿄 데이코구(帝國)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50년 10월에는 공보처에서 조직한 종군문화반원으로 복무했으며 1951년 6월에는 국방부 소속의 종군 화가단에서 활동했다. 1958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여 제작활동을 했다. 1962년부터 1969년까지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강사로 출강했으며, 1958년부터 1970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심사위원 및 초대작가로 활동했다. 1961년부터 1966년까지 한국미술협회 이사 및 감사로 활동했고, 1965년 국제 조형미술가협회(ISPAA) 한국대표로 활동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및 동위원장을 맡았다. 1991년에 선재미술관관장으로 취임하였다.

활동사항

1947년 미군정청 문교부가 주최한 종합미술전람회(綜合美術展覽會)에서 「인물」로 서양화부분 특선을 수상했다. 동화백화점내 화랑에서 1949년 11월 14일부터 19일까지 열린 첫 개인전에서는 37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1957년에는 ‘현대작가초대전’에 참여하여 추상회화를 시도하였고, 회화의 현대화를 추구하며 전후 모더니즘을 실험한 작가로서 자리매김하였다. 1958년 5월 14일부터 19일까지 중앙공보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후 프랑스로 유학하였고, 1962년 10월에는 귀국 후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때 작품은 엥포르멜의 영향을 보여주면서도 동양의 수묵화적 감각을 담은 것이라 평가되었다.

1971년 10월에는 일본 오오사카에서 타피스트리 전시를 개최했는데, 전통 목판화, 백제왕릉의 왕비관 모티프 등을 이용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 감각적이고 밝은 색체의 세련된 추상화면에 고구려 고분벽화의 문양, 단청의 색채, 기와의 둥근 연주문, 수막새기와, 오방색 등 전통적인 모티프를 이용했다. 전통적 모티프를 세련되게 이용한 밝고 투명한 추상화면은 이세득의 독자적 화풍을 보여준다.

그는 미술 행정가로서도 활동하여 선재미술관 관장직을 역임하였고 국립현대미술관 건립과 운영에도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미술기록보존소자료집』6(삼성미술관, 2009)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www.daar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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