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반경차는 역법(曆法)에서 천체(天體) 위치를 지구 중심으로 계산한 값과 지반경을 더한 위치에서 계산한 값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역법에서 천체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때에는 지구의 중심을 기준으로 계산하는데, 그 계산값은 지표면에서 해당 천체를 관측한 수치와 차이가 발생하게 되며, 이 차이를 지반경차라고 한다. 지반경차의 개념은 명말청초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다. 특히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 지반경차를 구하는 자세한 계산 방법이 수록되었다.
역법(曆法)에서 천체(天體)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때에는 지심(地心), 즉 지구의 중심을 기준으로 계산을 수행한다. 하지만 실제 해당 천체를 관측할 때에는 지표면 위에서 관측하므로, 관측값은 지심에서 지구의 반경을 더한 위치에서 계산된 값이다. 따라서 천체가 특정 시각에 예정된 위치에 운행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지심을 기준으로 계산한 값이 아닌 지표면을 기준으로 계산한 값을 사용해야 한다. 이처럼 지심을 중심으로 계산한 값과 지표면에서 계산한 값이 달라지는 것을 지반경차(地半徑差)라고 한다.
지반경차의 개념은 명말청초(明末淸初)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으며, 『숭정역서(崇禎曆書)』에도 실렸다. 그러나 그 원리와 자세한 계산 방법은 1721년(경종 1)에 편찬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 수록된 내용을 통해서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역상고성』에는 북경과 광동의 광주부(廣州府)에서 천체를 관측할 때 발생하는 지반경차의 값을 구하는 자세한 계산의 방법이 수록되었다.
지반경차의 개념은 『역상고성(曆象考成)』을 통해서 조선으로 전해졌고, 서명응(徐命膺)과 같은 조선의 학자들도 그 내용을 이해하고 『선구제(先句齊)』와 같은 저술에 반영하였다. 지반경차의 개념은 1770년(영조 46)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상위고(象緯考)」에도 자세하게 수록되었다. 한편 1742년(영조 18) 청나라에서 간행된 『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篇)』에서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타원 궤도 계산법을 도입하여 태양과 달의 운행 궤도를 계산하였다. 따라서 『역상고성후편』에서는 타원 궤도 계산법을 중심으로 지반경차 값을 구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