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역서(曆書)는 일반적으로 맨 앞에서부터 월력장(月曆張)과 연신방위도(年神方位圖) 장이 나오고 그 다음으로 매월의 역일(曆日)과 역주(曆註) 정보를 담은 장들이 등장한다.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배포되었던 상용력(常用曆)인 일과력(日課曆)은 달별로 역일과 역주 정보를 담은 장이 한 장(2페이지)으로 이루졌다. 따라서 일과력은 평년(平年)에는 12장, 윤년(閏年)에는 13장으로 구성되었다. 월력장은 12개월 혹은 13개월에 해당하는 역일과 역주의 정보를 간략화해서 한 장(2페이지)으로 요약해, 열람자가 한 해의 역일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월력장에는 길흉(吉凶)의 정보를 포함하는 여러 역주 정보는 생략되고, 역일 정보에 해당하는 그해의 전체 날수와 달의 대소(大小), 윤달의 위치, 그리고 24절기의 정확한 날짜 및 시각 정보만이 수록되었다. 예를 들어, 평년의 경우 월력장에는 한 해 354일의 날수와 12달의 역일 정보, 24절기 정보가 기재되었다. 윤년이라면 한 해 383일 또는 384일의 날수와 13달의 역일 정보, 24절기 정보가 기재되었다. 참고로 윤달에는 24절기가 기재되지 않았다. 월력장은 단력장(單曆張)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한 장으로 이루어진 달력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에서 간행한 역서들에서 일반적으로 월력장이 첫 번째로 인쇄된 면이었기 때문에, 월력장에는 그해 역서의 표제가 큰 글자로 기재되었다. 예를 들어, 1870년(고종 7) 일과력의 경우, 월력장의 첫 줄에 ‘대청동치구년세차경오시헌서(大淸同治九年歲次庚午時憲書)’라는 표제어가 적혔다. 따라서 월력장이 모든 역서의 표제장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의 월력장에는 관상감의 인장이 찍혔는데, 이는 해당 역서가 관상감에서 공식적으로 간행된 것임을 인증하는 의미를 지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