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보(鄭熙普)
이듬해 전적으로 승진되고 이어 병조좌랑으로 옮겼으며, 1727년 평강현령으로 나가 3년 동안 치적을 쌓았다. 1729년 아버지 상을 당해 고향에 돌아갔다가 삼년상을 마친 뒤 1732년에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다. 이 해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었는데, 정부의 구황 정책(救荒政策)이 삼남에만 치우치고 강원도와 경기도 일원에는 아무런 조처가 없음을 지적, 이의 시정을 간하는 소를 올려 왕의 하답을 얻었다. 1733년 사간원정언이 되고, 병조정랑을 거쳐 평안도도사로 부임, 청나라를 내왕하는 사람들에 대한 검색을 맡아 보았다. 1734년 사간원사간, 이듬해 사헌부집의, 1739년 시강원보덕 등을 역임하였다. 1741년 다시 사간이 되었는데, 당시 왕실의 외손이었던 원경하(元景夏)와 의견 충돌이 생겨 권력층으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