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응인 영정 및 재실 유물(韓應仁 影幀 및 齋室 遺物)
영창대군을 보호하라는 선조의 유교를 받은 일곱 신하의 한 사람으로, 초서(草書) 등 글씨에 뛰어났으며, 한어(漢語)에 능하여 수차례 명(明) 나라를 오가며 조선과의 화합을 이끌어 내었다. 임진왜란 때는 원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李如松)의 접반관(接伴官)이 되었다. 예조판서 · 우찬성 · 우의정을 지냈고, 평난공신(平難功臣)을 비롯해 네 차례나 공신에 책봉되기도 하였다. 1613년(광해군 5)에 일어난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되어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나 사후인 인조반정 후에 회복되었다. 영정은 세로 164㎝ 가로 91.5㎝의 비단 바탕으로, 오사모(烏紗帽)를 쓴 정장 관복으로 얼굴과 몸을 왼쪽으로 향한 전신좌안칠분면의좌상(全身左顔七分面椅坐像)이다. 두 손을 관복에 넣은 공수자세를 하고 있다. 가는 붓으로 얼굴의 이목구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