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응희(申應熙)
을미사변 때 조선인 행동대로 가담하였으며, 육군 참령(參領)을 지냈다. 대한제국기에는 중추원 부찬의, 전라남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함경남도장관, 황해도장관, 중추원 칙임관 대우 참의 등을 지냈다. 1928년 2월 12일 사망했다. 가숙(家塾)에서 한학을 배웠다. 김옥균(金玉均)과 박영효(朴泳孝)의 권유로 1883년 5월 서재필(徐載弼), 서재창(徐載昌), 박응학(朴應學), 정행징(鄭行徵), 임은명(林殷明), 신중모(申重模), 윤영관(尹泳觀), 이규완(李圭完), 하응선(河應善), 이병호(李秉虎), 이건영(李建英), 정종진(鄭鍾振), 백낙운(白樂雲)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1년 전부터 일본에서 체류하고 있던 정난교(鄭蘭敎)와 합류하여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일본어를 배운 후 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