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 둔남면 3·1운동(任實郡 屯南面 三一運動)
시위 군중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여 최대 2000여 명을 헤아렸다. 그들은 시장 내의 일본인 상점을 파괴하고,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장과 면서기들에게 같은 민족으로서 만세운동에 동참하도록 권유하였다. 이 날 저녁 남원헌병분견대와 임실경찰서에서 파견한 무장 병력이 출동하여 발포하자 만세 시위대는 일단 해산하였다가, 300~400명씩 무리를 지어 이튿날 새벽까지 계속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23일과 24일의 만세 운동으로 이기송, 오병용, 이만의가 체포되어 각각 징역 7년, 3년, 2년형을 선고받았다. 임실 둔남면 3·1운동은 임실군에서 처음 일어난 3·1운동으로서 의미를 가지며, 남원과 임실의 무장 병력이 출동, 발포까지 했다는 점에서 시위의 격렬성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