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군(金川郡)
1651년(효종 2) 우봉현과 강음현이 합쳐져 처음으로 금천군이 편성되었는데, 이는 비록 수도가 한양으로 옮겨졌지만 이곳이 금교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의 역할을 하는 데다가, 임진강변의 시변리와 조읍포가 물산의 집산지여서 그 중요성이 높았던 데 기인한 것이다. 시변리장터는 한강 이북에서는 가장 성대한 장시로 일컬어졌고, 조읍포는 황해도 황주·봉산·평산 이동지역의 조세양곡을 수납해 서울로 옮기는 곳이었다. 개성인삼이라고 이름 붙인 인삼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재배된 것도 발전에 큰 몫을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15세기 중엽 금천의 호수는 1,528호, 인구는 4,330명이었는데, 1828년(순조 28)에는 호수 4,119호, 인구 2만 700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근 대] 1895년 을미개혁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