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저토성(金馬猪土城)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위치한 백제의 토성이다. 토성은 금마면에서 서쪽으로 약 800m 정도 떨어진 저성산(猪城山)에 위치해 있으며, 저성산의 정상부에서 중복에 걸쳐 삼태기형으로 지어졌다. 성벽의 둘레는 396m, 성의 높이는 4~5m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내측과 외측에 기단이 되는 돌을 놓은 다음 그 내부에 흙을 쌓는 형태의 판축 토성이지만, 지형에 따라 돌로 쌓은 구간도 있다. 백제 토성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나, 최근에는 9세기 경에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금마저토성이 만들어진 시기와 배경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발굴 조사를 통해 성이 건립된 경위를 밝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성의 극히 일부만 조사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야 성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다.
금마저토성은 해발 87m의 저성산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삼태기 모양으로 지어진 산성이다. 일제강점기 자료에 이 산성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오는데, 여기에는 성황산 정상부에 이 산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마저토성에 대한 발굴 조사는 1991년 시굴 조사를 시작으로, 2015년 표본 조사, 2017년 성벽에 대한 시굴 및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 조사를 통해 금마저토성은 성벽 내외측의 하부에 기단이 되는 돌을 나열하고, 그 내부에 흙을 쌓아 만든 판축 토성인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전 구간이 판축의 방식으로 지어진 것은 아니다. 일부 구간은 돌을 일정한 높이까지 쌓는 방식으로 만들어 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벽 판축을 위한 영정주(永定柱: 나무기둥)는 북벽 구간에서 2.2m, 동벽 구간에서 2.75m 간격으로 세워져 있으며. 외측 기단 석렬의 바깥쪽에 기단 석렬들과 나란히 영정주가 남아 있다.
금마저토성이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백제 때 세워졌다는 주장과 9세기 대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금마저토성을 발굴 · 조사한 결과, 이 토성은 '기단 석렬 판축 토성'인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성벽이 지나는 구간의 내측과 외측에 기단이 되는 돌을 놓아 성벽의 너비를 한정한 다음, 내측 기단 석렬과 외측 기단 석렬 사이에 흙을 쌓아 토성벽을 완성한 형태이다.
기단 석렬 판축 토성의 경우, 중심 토루만을 축조하였을 뿐 내피 토루와 외피 토루는 축조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한 부분이다. 이러한 건축 방식은 중심 토루를 축조하고 그 내 · 외면에 외피 토루와 내피 토루를 축조하는 '순수 판축 토성'에 비해 인력과 예산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중심 토루가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순수 판축 토성에 비해 구조적으로 취약하다.